『사람의 아들』을 통해본 종교성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종교가 무엇인가? 종교의 본의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고 그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를 이행하려 하는가?’
뭐 이러한 물음은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라면 원초적으로 지닌 물음이리라. 그 물음에 대한 당연한 대답은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버거운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하다 보니 인간 이상의 초월적 존재를 희구하게 되어서 결국 형이상학적인, 즉 우리들의 두뇌 활동을 벗어난 초월자인 신을 만들고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히 같은 초월자를 모시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그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떤 모임이든 법적 체계가 갖춰져야 공동체가 분란이 생기지 않고 유지될 수 있듯이 이들은 자연히 교리를 만들고 그걸 상징화한 교회나 절 등의 체계가 갖추어진 종교기관을 세웠을 것이다. 그 종교를 합법화해야지만 핍박을 받지 않고 종교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이나 불경 같은 문서를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일관된 가르침을 전달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분명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그건 무신론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신자들은 여기에다 ‘그런 절박함과 애틋함의 감정이 종교를 창시케 된 배경이라면 신이란 사람은 그런 감정을 인간 개개인에게 부여함으로 인해 신의 존재가 은연 중에라도 있다는 걸 상기시키는 것이며 결국 그건 신을 믿도록 하기에 그러한 감정의 과정과 과정이 종교를 가지게끔 하는 결과까지 모조리 신의 살아계심을 증명하는 예일 뿐이다’고 덧붙인다. 어디까지가 옳고 그른가를 떠나서 어차피 인간은 종교와의 불가분적 관계에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자각 요소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사람의 아들』은 이문열씨가 쓴 좀 깊이 있는 종교 소설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적 회의론에 빠져 ‘아하페르츠교’를 창시케 될지도 모르는 그런 소설이지만 그건 역시 소소한 말다툼에 불과할 뿐이다. 종교적 배경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탐구하고 세세한 것조차 뒤집어 생각해보는 건 틀림없이 좋은 행동일 수만은 없다.
부산에서 서울까지의 길을 놓고 가까운 고속도도로 갈 수도 있는데 그냥 국도로 빠지고 산보로 가서 더욱 멀리 삥 돌아오는 결과 밖에 초래하지 않기에 결국은 ‘고속도로가 가장 빠르구나’하는 후회스런 결과 밖에 알지 못하다. 이것도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이러쿵 저러쿵 따져서 기독교를 버렸다가 그 속에 쪄들어 있었던 자기의 모습 때문에 다른 종교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늦게서야 귀의하게 된다손 치더라도 그건 ‘내 종교가 최고였구나’하는 결론만을 얻어낼 뿐이다. 그러니 그동안의 시간 여하는 허무맹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바로 민요섭이란 인물이 이 전형적인 예이리라. 절실한 신자로 신학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다가 회의를 느껴 좀 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신상(神像)을 찾아 떠난다. 그렇게 빈민구제, 노동쟁의 등의 실질적인 행동만을 추구하며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정립해 간다. 그 와중에 쓴 소설이 ‘아하스 페르츠’이다. 그의 대리인이자 하나님과 대립하는 악마로 성경에 묘사된 인물을 희화화해서 쓴 것이다. 그러던 중 여관집 아들인 ‘조동팔’에게 깊은 인식의 변화를 주어 자신의 추종자로 만든다. 물론 조동팔의 의지로 말이다. 그렇게 조동팔 혼자서 요섭을 깍듯이 모시며 지상낙원을 꿈꾸며 그렇게 살아가다가 나름대로의 신앙관을 정립해 나간다. 그러나 나름대로의 정립은 막다른 벽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들이 정립해 놓은 신은 그저 맘씨 넓고 모든 걸 다 들어주는 허상적인 바람일 뿐이었다.
그런 바람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알아버린 민요섭은 너무나 급진적으로 자기의 사상에 빨려 들어와 모든 것을 다 퍼부었던 조동팔에게 죽임을 당한다. 모든 걸 다 줄 만큼 급진적이었기에 그에 대한 실망 또한 더욱 컸으리라. 종교적 사상을 따지는 것은 올바른 신앙을 위한 척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회의적으로 만드는 요소임엔 틀림없다. 하나님의 존재하심만 믿는다면 그것만을 붙들 것이지 인간의 문자화된 소치의 영역에서 그를 한정시키려 해선 안 된다. 진정 중요한 건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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