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간의 대민지원
02년 5월 9일(목)~10(금) 맑다가 구름낌
이틀 간 그렇게 나가고 싶던 대민지원을 나섰다. 사실 어제(8일) 나갈 기회가 충분히 되었고 분대장님까지 나를 찍어서 나가라고 했지만 어제까지 했던 화생방 물자 분류가 끝나지 않은 터라 오늘까지 그걸 하리라 생각하고 거절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물자 분류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무척이나 아쉬워서 나가고 싶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나가게 되니 기분이 무지 좋더라.
더더욱이 신난 좋은 까닭은, 3소대에서 훈련을 뛰기에 우리 소대는 대항군 역할을 해야 하다는 것이었고 그래서 분대장님 외 한 명씩 분대에서 빠져야 하는데, 우리 분대에선 광화가 뽑혔기에 나는 대민지원을 나갈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훈련까지 하지 않으며 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던가? 여담으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훈련이 새벽 네 시까지 진행되는 바람에 대민지원을 끝내고 저녁에 복귀했을 때 훈련인원은 복귀하지 않았기에 모처럼 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들뜬 기분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휴가도 아닌데 모처럼만에 밖에 나간다는 게 그렇게 특별한 의미로 나에게 와닿았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 소대 21명은 지통실에 올라가서 신고를 한 후 바로 위병소도 갔다. 거긴 이미 우릴 데려갈 농민분들로 인사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꼭 노예시장이나 인력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우리들은 가만히 서 있고 모두 우리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좀 무서운 맘이 들 수도 있지만 지금 이곳에 계신 분들은 신분이 확실한 걸 어쩌랴. 서로를 믿는 마음으로 배치된 데에 따라 그들을 따라 갔다. 이틀 중 첫째날은 GOP 1중대 2소대인 61통문 후방 논에서 일했고 이틀째는 5사단 GOP 지역쯤인 걸로 보이는 후방에서 일했다. 첫날은 모판을 칼질해서 이양기에 실어주는 일을 계속했기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둘째날은 모판을 12장씩 배열하는 일을 했기에 좀 지루하면서도 힘들었다.
난 대민지원을 나가면 농민집 근처의 논밭에서 일하고 점심이나 간식은 그 집에서 먹고 그 집 사람들과도 자연히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전혀 아니었다. 지역 특성 상 이곳의 논밭은 군인 통제선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농민의 집과는 한참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은 오로지 논만 있고 미리 준비된 음식들만 먹어야 했다. 그렇다고 내가 먹을 것을 안 먹을쏘냐? 술도 많이 마시고 오랜만에 사람 간의 인심을 느끼며 맛있는 것도 엄청 많이 먹었다. 오랜만에 취기를 느껴가며 작업도 해보고 취기 속에 복귀해선 소대일도 해보니 기분이 좋았다.
첫째 날은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훈련에 나간 소대원들이 새벽 4시에 복귀하단다. 그래서 부대에 복귀하니 아무도 없어 혹 19R에 근무지원 나갔을 때와 같은 자유를 만끽하며 한껏 여유를 누렸다. 이런 식의 대민지원이란 것을 해보며 모처럼만에 민간인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해방된 듯한 느낌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거기다 함께 지원을 나간 박준과는 맘이 잘 맞아 재밌게 콤비 플레이할 수 있어서 재밌었다.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 수양록, 상병 - 02.05.19(일) 짜증 나는 훈련준비와 군장검사 (0) | 2022.07.01 |
---|---|
군대 수양록, 상병 - 02.05.13(일) 중간일을 열심히 하는 세 가지 이유 (0) | 2022.07.01 |
군대 수양록, 상병 - 02.05.05(일) 바쁜 소대일과 교회일 (0) | 2022.07.01 |
군대 수양록, 상병 - 02.04.26(금) 아버지 군번의 전역을 축하하며 (0) | 2022.07.01 |
군대 수양록, 상병 - 02.04.26(금) 19연대 근무지원이 끝나는 마당에 (0) | 2022.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