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군번의 전역을 축하하며
02년 4월 26일(금) 서늘하지만 맑음
오늘 아버지 군번이었던 이규희씨와 임대호 씨가 집에 갔다. 두 분 다 나의 군생일에 있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었기에 왠지 섭섭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규희 씨는 우리 부대 선임으로서 분대장을 거의 10개월 정도 잡았기에 그런 면에서 좋은 모습, 그렇지 않은 모습을 다 마주하며 군 생활의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고, 임대호씨는 우리 소대 출신이지만 대대군종이었기에 신앙적인 면에서 모범을 제시하는 아버지였다.
특히 이규희씨에게 미안한 게 많은데, 이등병 시절에 갑자기 아파서 근무를 설 수 없을 때, 비번임에도 그걸 포기하면서 근무를 서줬고, 백일휴가 즈음해선 일개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옷을 다려줬으며, 무엇보다도 가장 미안한 일은 누가 뭐라 해도 GOP 때 사진기 사건과 암구호 빵구 사진 때문에 날 때리던 소대장님을 말리려다 뺨까지 맞고서 같이 군장을 들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서 연병장을 돌았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 당시의 난 미안한 마음이 있었으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사과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난 떳떳하단 생각에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그네들에게 오히려 신경질을 냈었다. 연거푸 짧은 시간 내에 세 가지 사건이 터지며 크게 위축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나에 대한 행동들이 공격으로 느껴져서 그런 거겠지. 그런 신경질적인 마음은 계속 되어서 페바에 나와서 군종이 되던 순간에도 보고를 안 하고 그냥 결과만 통보하는 통에 티격태격하며 말이 많았다.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았기에 나가시는 마당에도 나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넌 정말 재미없어. 넌 머리도 있고 괜찮은 것 같은데 융통성이 없어서 문제야. 특히 이제 중간이잖아. 중간이면 너의 계획과 고참들의 통치 방법이 다르니까 많이 싸워야할 시기인데, 넌 아직도 갈굼을 당하고 있으니까 한심할 정도다. 좀 더 열심히 하려 해야 하고 좀 더 융통성 있게 생활했으면 좋겠어.”라고 말씀했다. 사실 ‘넌 재미 없어’와 ‘내가 보기에는 군 생활 잘하는 거 같지 않아’라는 말을 듣고 용준이나 현우한테는 “잘하고 있고 그렇게만 군 생활해라. 그렇게 하다 보면 인정 받을 거야”라고 상반된 반응의 얘기를 하는 걸 들었을 땐 너무도 비교가 확 되어 기분이 안 좋았다. 어쩔 것인가 나 스스로 군 생활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을뿐더러 열정도 그만큼 없는 것임을. 그렇지만 아직도 갈굼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엔 자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좀 더 체계적인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어쨌든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며 1년 남은 군 생활을 바로 잡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이규희씨는 나의 아버지 군번으로 이처럼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내가 중대 군종이기에 임대호씨는 인간적으로 따르고 싶던 존재였다. 이를테면 신앙의 뿌리라고나 할까? 모든 사람에게 편한 사람이었으며 교회에 관련된 일에서 인정 받던 형제이기에 나도 그 길을 따르고자 하는 맘이 절로 들었다. 물론 나도 할 수 있다는 저력은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일 테지만 그 본보기는 임대호씨가 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떠나 다시 볼 순 없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분야에서 나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사람이 인사를 하면서 영영 떠나가니 너무나 아쉽고 쓸쓸해졌다. 두 사람 모두 이제 전역이란 꿈을 이뤘으니, 더 높은 이상을 향해 더 큰 나래를 맘껏 펼쳤으면 좋겠다. 살펴가십시오, 아버지들이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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