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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수양록, 상병 - 02.06.14(금) 청성의 자부심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군대 수양록, 상병 - 02.06.14(금) 청성의 자부심

건방진방랑자 2022. 7. 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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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의 자부심

 

02614() 맑음

 

 

정신집체교육 D-1일의 날이다. 오늘 오후엔 청성의 자부심이란 이름 아래 역사스페셜 북한군은 왜 3일간 서울에서 머물렀나?라는 걸 보게 되었다. 한마디로 우리 6사단이 얼마나 한국전쟁 당시에 밀물처럼 내려오던 북한군의 다리를 묶으며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프로였다. 북한군이 3일간 지체하므로 결국 한국전쟁의 양상이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들이 진격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서울만 공격하려 했다는 것과 둘째 한강대교의 파괴로 그들의 도하(渡河)는 지연됐다는 것 두 가지로 나뉜다. 하지만 첫째의 경우, 서울만 장악하면 이남에 있던 빨치산 세력들이 서로 봉기하여 자연히 통일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는 것으로 빨치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그 이면에 두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50년대에 이르러 남한에서 대대적인 빨치산 퇴치 작전이 있었기에 그들의 세력이 완전히 쪼그라든 상황이라 협조를 바랄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의견의 경우는 어떨까? 한강대교가 비록 파괴되었을지라도 철교는 상단부분만 파괴되어 군사장비를 활용하며 복구도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이 또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유로 3일 간 서울에서 머물렀던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선 그들의 전략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전략은 4개 사단이 서울을 장악하고 2개 사단이 홍천과 수원까지 진격하므로 밀려 내려오는 남한군을 모두 섬멸한다는 전략이었다. 그 요지는 수원 장악과 서울 장악이 동시에 이뤄지므로 서로 보완한다는 것이었는데 바로 예상치 못하게 수원 장악선이 지연되게 된 것이다. 춘천지방에 주둔해 있던 6사단은 평시에 교육훈련을 충실히 해두었고 호진지 구축에 최선을 다한 결과, 그리고 심일 중위를 비롯한 육탄 10용사로 그들의 탱크를 10대 정도를 대파한 결과 승승장구하던 그들은 뒷통수를 가격 받은 마냥 충격을 받고 사기가 꺾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국전쟁 초반에 모든 군이 북한군에 밀려 남하만 했다던 그런 침울한 역사만을 알던 우리들에게 6사단의 그와 같은 전공(戰功)은 가슴을 뛰게 했다. 6사단이야말로 그런 역사의 거짓에 맞서 방어를 하므로 밀물처럼 내려오던 북한군을 서울에서 3일이나 묶어둠으로 결국은 승리까지 쟁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이 절로 느껴졌다. 일주일 내내 계속된 정신교육으로 넋이 나가려던 차에, TV6사단이라 말이 나오자마자 눈을 땡그랗게 뜨고 TV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린 어쩔 수 없는 6사단의 소속의 군인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정신교육을 하는 거겠지. 자랑스럽다 우린 대한민국의 현역 군바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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