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벼랑으로 몰며 신경적인 내가 되다
02년 5월 24일(금) 맑음
전투지휘검열의 마지막 날이다. 이번 전투지휘검열은 어땠냐고? 한마디로 월을 때리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지뢰지대, 철조망 설치 훈련도 안 했고, 화학전 하의 준비태세도 안 했을뿐더러, 열심히 그 임무를 부여해주었던 전투력 복원 훈련까지 19R 2BN으로 넘어감에 따라 우린 별로 하는 일 없이 모처럼만에 흠뻑 자유를 만끽하며 지냈다. 더더욱이 오대기이긴 했는데 훈련 기간과 겹친 덕에 며칠동안은 상황조차 걸리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역시 모든 훈련은 훈련기간보다 준비기간이 빡센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훈련 기간 동안은 간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짐에 따라 이래저래 깨지는 상황들이 많다 보니, 우리들도 덩달아 화가 나기도 했다. 이번 훈련 중에 에피소드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승권이가 일주일간 같이 생활했다는 것이고 둘은 재현이 것 반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승권인 올해 2월에 본부중대로 가버렸다. 진즉 가고 싶었을 터인데, 정훈병이란 직책을 받고서 본부로 가고 말았다. 하지만 생활해 보니 영 탐탁치 못했나보다. 그것이 아니라면 과거에 대해 그저 맹목적으로 느껴지는 그리움으로 그곳 생활에 불만을 가졌던지 할 테지. 어쨌든 그래서 오고 싶던 찰나에 이번에 일병휴가를 복귀하게 되었고 검열이기 때문에 소속되어 있던 3중대로 와서 일주일간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아무래도 은근히 남아 있던 친근감 때문에 반가웠던 것이고 승권이 또한 이곳 생활에 만족해하며 기뻐했기 때문에 우리 또한 반갑게 맞이했다. 역시나 이런 경험처럼 사람이 생이별을 해볼 필요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씩은 떨어져 봐야 그제야 그 사람의 빈 자리를 느낄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충실히 일주일 간 생활을 하다가 오늘에서야 소대를 떠나 본부로 간 것이니 아쉬운 맘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라.
그리고 국지도발을 할 때 재현이 것 반합을 잊어버렸다. 내가 주라고해서 챙겨서 내려갔고 내려가선 국을 다 탔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내 거 반합은 챙기고 재현이 거 반합만을 덩그러니 남겨둔 채 신경도 않고 그냥 올라온 것이다. 안 챙긴 나도 문제고, 마지막에 그걸 보고도 못 본 체 한 사람도 문제고 자기 물품 관리에 소홀히 한 재현이도 문제였다. 그 사실을 국지도발이 다 끝나고 부대에 복귀하고 나서야 알았으니, 더욱 어처구니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사실을 분대장님이 알게 되었고 화를 내시며 수도고개 낙석까지 얼른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 축 쳐진 사지를 이끌며 40분 거리를 내달려 반합을 찾았는데 다행히도 아직도 그곳에 덩그러니 있더라. 그 당시엔 앞이 막막했지만 그렇게 일은 잘 매듭되었고 난 재현이에게 거듭 사과하며 나의 무책임함을 탓했다. 하지만 이건 다분히 내 성격 탓이다. 언제나 나만을 억누르며 나만을 먼저 나무라던 자세 말이다. 어찌 보면 좋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좋은 행동이라 할 수는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참들의 말처럼, ‘그건 다분히 자기 물품 확인을 안 했던 재현이의 책임인 거야’라고 책임 회피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과연 나를 언제나 벼랑 끝으로 내몰아서 얻어낼 수 있는 결론이란 무엇일까?
요새 마치도록 힘들다. 사실 생활이 힘든 건 아니다. 중간이 되고 나서 편해졌으면 편해졌지, 불편해지진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이런 힘듦은 어디서 오게 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휴가로 인해 기인되는 것 같다. 마지막 휴가(일병휴가)를 갔다온 지 벌써 6개월이나 흘렀다. 이 시간을 버텨온 것도 용하지만 앞으로도 휴가를 나가지 않고 5개월이란 시간을 버텨야함이 거대한 불행인 양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0월에의 휴가, 그건 대용이외의 내기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결국은 나와의 싸움으로 귀결되었다. 치열하리만치 끝이 안 보이는 싸움, 친구들에게도 모두 말해버렸기에 더더욱 그 무게가 있는 것이며 그 무엇보다도 나에게 스스로 했던 다짐이기에 꾹 참으려 노력 중이다.
가끔씩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과 편안한 집의 이미지들이 나의 그런 다짐을 무색케 만들어 골치 아프게 할 때가 많다. 이런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를 미안하게도 후임들에게 푸는 일일 뿐이었다. 중간이란 입지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후임들을 갈구는 것으로 휴가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그래서 요즘에 나는 내가 생각해봐도 너무도 신경질적이기만 하다. 과연 이 상황에서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 미칠 것인가? 아니면 잘 버티다가 10개월 만의 상병휴가를 잘 다녀올 수 있게 될 것인가?
03년 2월 제대를 2개월 앞두고 훈련을 뛰며 분대원들과.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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