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 마음 다잡기
03년 3월 27일(목) 구름
마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아무리 자기의 현실 기반 하에서 자기의 명확하게 할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동하거나, 뭔가에 이끌리게 되면 그것에 따라 자기 할 일도 제대로 못할 뿐더러, 여러 환상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최대한 되도록 늦게 견장을 떼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부터 많이 해왔지만(솔직히 견장 달고 있다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없을 뿐더러, 일직을 서지 않는 날에 푹 잘 수도 있고 일직부관 서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으니까) 동기들도 이미 저번 금요일에 다 견장을 떼었고 훈련 기간 중에 부소대장으로부터 빠른 시일 내에 견강을 떼어준다는 말을 들으니깐 그럴 바에야 오래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니깐. 순식간에 맘이 동하면서 견장을 잡고 있다는 게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며 분대장으로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 웃기지 않은가? 이미 그렇게 가지고 있던 건 나의 소식이자 신념 같은 건데,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까지 했다. 그렇게 해서 바뀐 맘가짐은 지금 현실에 대한(그러니까 분대장으로서의 현실) 아무 관심 없음이 되었고, 그냥 빨리 일반역으로 돌아가고들 뿐이다. 지금 내 상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둥 떠있는 상태라고나 할까~
예전에 신교대 시절에 써놓았듯이, 마음 먹기에 따라 사람이 180도 바뀔 수 있다. 좋은 맘이나 기쁜 맘을 먹는다면 아무리 힘든 여건에 있더라도 충분히 웃을 수 있고, 짜증 나는 말이나 괴로운 맘을 가진다면 아무리 편하고 괜찮은 여건에 있더라도 회가 몸속 깊이 방망이질 할 것이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가? 환경의 좋고 나쁨에 상관없이 마음 먹기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말이다. 아주 쉬울 것 같으면서도 충분히 어려운 그런 얘기이다.
지금 내 맘 상태는 충분히 최악이다. 아주 객관적으로 예전 일, 이등병 때에 비하면 지금이 열배, 스무배 더 편하지만 이상하게 힘든 건 그 때 못지 않고 짜증도 그때 이상으로 난다. 왜냐하면, 그건 지겹도록 한 군 생활에 대한 후유증이며 부소대장이 분대장을 떼어 준다고 한대서 기인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 몸만 군대에 있는 셈이다. 마음이 이미 콩밭인데 이 생활이 재밌을 리, 견장을 계속 잡고 싶을 리 없다. 이렇게 쓸모없는 놈이 될 바에야 어여 떼는 게 좋은데 계속 잡고 있는 것은 소대의 짐이자, 나에 대해서도 손해일 뿐이다.
마음에 움직임에 따라 의욕 내지는 환경에 대한 파악이 순식간에 바뀐 것을 보고서 느낀 게 있다면, 자기를 정령 잘 컨트롤하고 님에게 인정 받는다는 건 특별하게 있는 게 아니라 자기 맘을 잘 다스린다는 것이다. 마음이란 게 칼로 물 베기와 같다. 죽고 싶을 정도로 짜증의 순간에도 마음만 가라 앉힐 수 있다면, 오히려 편했던 순간보다도 더 편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난 지금부터 내 맘을 다스리려 한다.
30일 남은 군 생활도 나름대로 뜻깊고 알차게 보내면서 덩달아 며칠 안 남은 분대장 임기를 잘 마치려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날짜나 세면서 조급해할 필요도 절대 없고 시간을 늘 세면서 앞날의 시간을, 지금인 척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총 790여 일의 군 생활 가운데 이제 겨우 한 달 남았는데, 그 한 달이 결코 민간인의 시간일 순 없다. 그럴 비에야 이 시기에 아이들을 더욱 잘해주며 동화될 시간을 갖는 게 나올 것이며 예전의 열정에 반만이라도 불살라서 생활한다면 더욱 나올 것이다. 그리고 또한 군종 말년이라 해서 하나님께 소홀히 할 순 없지 않은가~ ‘끝마음을 첫마음처럼 한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終心如初心이면 可以變世라]’ 하나님은 무변하시며 우리들 곁에 영원히 계시는 분인데 나의 한계적인 생각 때문에 소홀히 해선 안 되잖은가. 고로 주목하시라. 지금의 이런 말년의 자포자기(自暴自棄) 자세를 버리고 이젠 융화되면서 멋진 군생법의 끝을 장식해야겠다. 마음을 끝까지 잘 다스려 보리라.
대대 일직사관을 서는 건 분대장의 특권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맘은 흔들리나?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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