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은 조광일(針隱 趙光一)
趙光一, 以針術名, 自號針隱. 足未嘗跡朱門, 門亦無顯者跡.
或問: “以子之能, 何不交貴顯取聲名, 乃從委巷小民遊乎?”
光一笑曰: “彼貴顯者, 寧少醫生哉? 所哀者, 獨委巷窮民耳. 且吾操針而遊於人, 數十年矣, 日療數人, 月治十數人. 計所全活, 不下數百千人. 夫數十年, 可活萬人, 吾事畢矣.” 『壺山外記』

해석
趙光一, 以針術名, 自號針隱.
조광일(趙光一)은 침술로 이름이 났기에 자호를 침은(針隱)이라 했다.
足未嘗跡朱門, 門亦無顯者跡.
발자취는 일찍이 양반집【주문(朱門): 붉은색으로 치장한 대문으로, 귀족이 사는 고대광실(高臺廣室)을 말함.】에 닿지 않았고 그의 집엔 또한 현달한 사람의 발자취가 없었다.
或問: “以子之能, 何不交貴顯取聲名, 乃從委巷小民遊乎?”
어떤 이가 “자네의 재능으로 어째서 귀하고 현달한 이와 사귀어 명성을 취하지 않고 이에 마을의 하잘 것 없는 이를 따라 교유하는가?”라고 물었다.
光一笑曰: “彼貴顯者, 寧少醫生哉? 所哀者, 獨委巷窮民耳.
조광일이 한 번 웃으며 말했다. “저 귀하고 현달한 이에게 어찌 의원이 적겠는가? 슬퍼할 것은 유독 마을의 빈궁한 백성일 뿐이지.
且吾操針而遊於人, 數十年矣, 日療數人, 月治十數人.
또한 내가 침을 잡고 사람에게 교유한 지 수십 년으로 어떤 날은 몇 명을 낫게 했고 어떤 달은 몇 십 명을 낫게 했네.
計所全活, 不下數百千人.
삶을 온전케 한 것을 헤아리면 수백 명 아래론 내려가지 않지.
夫數十年, 可活萬人, 吾事畢矣.” 『壺山外記』
대체로 수십 년이면 만 명을 살 수 있게 할 테니, 나의 일을 마치려네.”
인용
지도 / 교과서 / 이향견문록 / 針隱趙生光一傳 /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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