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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0.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0.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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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다

 

 

어젠 그래도 간간히 햇살이 비치며 기온도 높아 꽤 덥게 느껴졌는데, 오늘은 벌써부터 구름이 한가득 끼어 있어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목도리를 목에 칭칭 감고, 겨울용 외투로 중무장을 했다.

 

 

가까운 곳에 해장국집이 있어서 들어왔다. 배불리 먹고 이튿날의 일정을 시작해보련다. 

 

 

 

해장국, 넌 나에게 치욕을 안겨줬어

 

아침은 호텔 근처에 있는 미향해장국집에서 먹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해주는 곳인 줄은 알았는데,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문을 열고 들어가 해장국 하나 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얼큰한 맛과 순한 맛 중 뭐로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보통 때였으면 당연히 순한 맛을 시켰을 거다. 누군가는 매운 것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는데, 난 매운맛은 질색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날은 추위 속에서 하루 종일 달릴 생각을 하니, 차라리 매운맛을 먹어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당히 얼큰한 맛 하나요라고 외쳤다.

여긴 특이하게 각 테이블마다 불판이 놓여 있고, 불판 위엔 돼지기름이 올려 있다. 얼마 지나지 않으니 밑반찬과 달걀이 나왔는데 그 중의 한 접시는 매우 특이한 구성이더라. 김치와 무생채, 그리고 콩나물 버무린 게 한 접시에 담겨 있었으니 말이다. ‘왜 다른 반찬들은 각 접시에 나눠져 있는데, 얘네들은 한 접시에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달걀을 보며 해장국이 얼마나 매우면, 미리 위장을 풀어놓으라고 이렇게 삶은 달걀까지 주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로 식탁 모서리에 달걀을 내리쳤다. 그런데 아뿔사~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달걀 껍질만 깨져야 정상인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껍질이 깨진 곳으로 허여멀건한 속 내용물이 밑으로 쭉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렇다, 이건 삶은 달걀이 아닌 날달걀이었던 거고, 그 순간 나 완전히 새 됐어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자주 있었나 보다. 서빙을 하던 친구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 달걀은 가운데 놓인 불판에 구워서 후라이로 해 먹으라고 준 거예요. 그리고 불판에 저기 놓여 있는 밑반찬들도 구워서 먹으세요. 달걀 새로운 걸로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깔끔하게 정리해주더라. 이런 치욕을 안겨 준^^;; 해장국은 난생 처음이야~

 

 

이렇게 밑반찬이 차려진다.  다른 해장국집과는 매우 다른 조합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 얼큰해 보이는 해장국이 마침내 나왔다. 그리고 불판엔 달걀과 함께 야채까지 넣어 볶고 있었다. 그 어느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냄새가 솔솔 풍기며 침샘을 자극한다. 마침내 해장국도 한 숟가락 떠 먹어보고, 볶은 김치도 한 입 먹어봤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둘 다 사정없이 매웠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해장국은 순한 맛으로 시킬 걸 그랬다. 그랬으면 나름 매운 정도가 알맞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먹어야 했기에 해장국을 한 숟갈 떠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를 반복하며 천천히 먹어야 했다. 그러니 아침밥을 먹는데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더라. 맛있게 음미하듯 먹고 싶었는데, 완전히 실패!

 

 

보기엔 더할 나위 없이 맛있어 보이나, 이거 이거 너무 매운 것 투성이잖아.  

 

 

 

서귀포로 가는 아름다운 길

 

해장국을 먹고 가는 길엔 이마트와 제주월드컵경기장이 보이더라. 이 이마트로 말할 것 같으면 2011년에 왔을 때 땀을 흘린 상태에서 맥주 한 캔과 꼬치를 사서 만찬을 즐겼던 추억의 장소.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마시는 맥주의 맛이란 세상 그 어느 것에도 비길 수 없는 최고의 맛인데, 오늘은 그와 같은 황홀한 경험을 할 순 없었다. 지금이 아침시간이기도 했고, 날씨까지 어둡고 서늘하여 전혀 맥주가 끌리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음 여행엔 이곳에서 다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킬 수 있는 영광을 기약해보며 앞을 향해 달렸다.

 

 

2011년의 이마트와 이번에 서귀포에서 내려가며 본 월드컵경기장과 남해바다.   

 

지금까지 두 번의 제주 여행 중에 서귀포를 지날 때 일주도로로만 가며 서귀포는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었다. 이러니 여행은 한 번 간 것만으론 알 수 없는 게 너무나 많다. 물론 2012년에 왔을 땐 아이들에겐 이중섭미술관을 둘러보고 저녁거리를 사오도록 했지만, 교사인 나는 서귀포 시청 쪽에 자리를 잡고 편히 쉬었으니 역시나 둘러보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그때 아이들이 사온 쌀의 비닐이 터져 꽤 많은 양이 쏟아지는 바람에 아이들과 함께 쏟아진 쌀에 대한 애도송을 부르기도 했던 웃픈 에피소드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쌀 하나로 우리들의 즐거운 놀거리가 생겼다. 역시 우린 살아 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이중섭미술관을 목표로 잡았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지도로 검색해보니 일주도로가 아닌 다른 길을 알려주더라. 일주도로 바로 밑에 있는 길로 조가비박물관과 서귀포 예술의 전당을 지나는 길이었다. 다행히도 이 길은 어제와 오늘 달린 길 중 최고의 길이었다. 오른쪽으론 제주의 남해가 손에 잡힐 듯 곧바로 보이고, 왼쪽엔 한라산의 웅혼한 자태가 한껏 드리워져 맘껏 감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도로를 달리며 제주의 바다와 제주의 산을 이렇게 동시에 볼 수 있는 길은 흔하지 않다. 그러니 서귀포를 지날 예정이라면 이 길로 꼭 가라, 아니 매우 천천히 두 번 가라~

 

 

이 루트로 서귀포에 가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거기서 얼마 달리지 않으니 이중섭의 작품이 전시된 길이 나오더라. 속도 감속 안내판엔 이중섭의 소가 그려 있고 절대감속 황소가 놀랄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더라. 그걸 보니 마침내 이중섭 월드가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중섭의 세계와 접속하기 일보 직전임을 알 수 있었다.

 

 

이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프로스트의 시처럼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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