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후회 없던 우도 소풍에서의 점심식사
한참 해수욕장에서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들고 있으려니,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우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내내 보니 ‘땅콩아이스크림’이라 씌어 있는 간판이 자주 보이더라. 땅콩아이스크림이라면 월드콘 위에 얹어 있는 땅콩이 떠오른다. 과연 그 맛과 무엇이 다른지 한 번 먹어봐야겠다.
▲ 날씨가 확 개었다.
호기롭게 주문한 점심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음식점이 눈에 띄었다. 거긴 해물짬뽕과 한라산 볶음밥, 전복스테이크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곳인데, 매우 맘에 드는 점은 일인분도 주문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홀로 여행족이 가장 난감할 때가 그 지역의 음식을 먹고 싶은데 대부분의 음식점은 2인 이상만 주문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해장국이나 중화요리 같은 음식으로 때워야만 하는 거다. 그런데 여긴 그러지 않아도 되니 정말 다행이었다. 그뿐인가, 현금으로 결제할 경우엔 땅콩아이스크림까지 준다고 하니, 고민하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맘이 정해졌다면 그저 갈 뿐.
▲ 내가 앉은 자리에선 제주의 넘실거리는 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7분 정도 달리니 음식점에 도착했다. 10시 20분밖에 되지 않아 너무 이르지 않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벌써 한 팀이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더라. 그래서 나도 전망이 좋은 창가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세 가지 음식을 모두 시키면 17.000원이지만, 2가지 음식을 시키면 12.000원이라고 알려준다. 가격 차이 때문이라도 잠시 망설이긴 했는데, 막상 여기까지 온 이상, 그리고 또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에 크게 “3가지 모두 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래 이럴 때나 보짱 있는 사람처럼, 통 큰 사람처럼 질러보고 누려보는 거다. 돈은 버는 것만큼이나 이렇게 잘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하니, 나의 패기 있는 주문에 절로 행복해진다. 과연 음식 맛은 어떨까?
▲ 보통 이런 음식점은 당연히 2인분 이상만 주문 가능한데 홀로 여행족을 배려해 1인분도 주문 가능하는 것이 좋다.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세 가지 음식, 그리고 평이함
무작정 제주로 여행을 떠난 지 3일 만에 마침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주문하게 됐다. 그간 중화요리나 해장국만 먹었으니 이순간이야말로 여행다운 여행의 순간이라 할 수 있다.
해물짬뽕부터 나와서 얼른 국물부터 떠먹어봤다. 요즘 들어 짬뽕에 푹 빠져 정말 깊은 맛이나 감칠맛 나는 짬뽕을 찾아다니곤 하는데 강릉에서 먹어본 교동반점의 짬뽕은 후추맛이 너무 강하고 국물은 밍밍하여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과연 이곳의 맛은 어떨까? 약간 매콤하며 불맛도 나긴 했는데, 해물의 깊은 맛이 배어 있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꽃게도 들어 있고 낙지도 한 마리가 떡 하니 들어 있어 먹을 게 많아서 행복하다고나 할까.
조금 기다리니 스테이크와 전복이 구워져 나왔다. ‘과연 이건 무슨 맛일까?’ 너무도 궁금하여 스테이크부터 조금 떼어서 먹어봤는데,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함박스테이크 맛이더라. 전복도 별 다른 소스가 발라져 있지 않아 그저 구운 전복맛이었다. 두 음식 모두 실패!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이 실패의 불운을 상쇄시켜줄 것인가? 마침내 한라산볶음밥이 나왔다. 가운데엔 김치볶음밥이 있고 곁엔 치즈와 계란이 둘러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한다. 그래서 김치볶음밥부터 먹어보니 좀 매운 맛이 나더라. 아마도 곁에 있는 치즈와 계란과 함께 먹으라는 뜻에서 김치볶음밥엔 간을 좀 세게 한 듯했다. 그래서 둘을 섞어서 먹어보니 맛이 꽤 괜찮더라. 원래 뷔페에선 맛을 기약할 수 없듯, 세 가지 음식에서 깊이 있는 맛을 원했다니 이것이야말로 날강도 같은 심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저 여긴 세 가지 메뉴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정도로 의미를 둬야한다는 얘기다.
▲ 세 가지 음식을 다 맛볼 수 있으니, 그것도 배불리 먹을 수 있으니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외로움을 느끼다
세 가지 음식이 적당량만 나왔음에도 한 사람이 먹기엔 부담이 되는 양이었다. 나처럼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게 아니라면 두 가지 음식만 시켜서 그 맛을 음미하며 먹는 게 낫다. 하지만 어차피 이걸 먹은 이후론 제주로 돌아가 내내 달릴 예정이니, 양이 많다는 건 나에겐 다행스런 일이었다. 천천히 바다를 보며 조금씩 조금씩 먹어야지. 볶음밥 한 잎 먹고, 스테이크 한 잎 씹고, 짬뽕 국물로 입가심하면서.
바다를 맘껏 보며 이렇게 먹고 있으니 참 팔자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에 올 때만해도 이런 여행을 꿈꿨었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가, 써지지 않으면 책도 봤다가, 책도 안 들어오면 그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봐도 행복하겠거니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그런 바람이 이 순간엔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이니, 더 이상 무얼 바라랴.
음식을 천천히 먹었음에도 30분 만에 다 먹었다.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 먹으면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혼자서 먹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을 먹는 속도가 빨라졌나 보다. 이곳은 특이하게 현금으로 계산하면 땅콩아이스크림을 서비스로 주기에, 계좌이체로 결제를 했다. 땅콩아이스크림은 그저 흔히 맛볼 수 있는 샤베트의 맛에 땅콩의 맛이 함께 곁들여진 맛이랄까. 어찌 되었든 17.000원에 네 가지 음식을 먹었으니 그것도 바다를 보며 배불리 먹었으니 그걸로 됐다.
▲ 땅콩아이스크림이 우도에서 유명하던데, 상상 가능한 맛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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