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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5. 존재가 선물이 되는 순간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5. 존재가 선물이 되는 순간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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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존재가 선물이 되는 순간

 

 

표선면까지 가는 길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가득 끼더니 더욱 흐려졌고 맞바람까지 불어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2시간 정도 걸릴 거리가 그래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2011년 사람여행 때 포항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 아침으로 먹은 것. 이때 맥주의 맛을 알았다지.  

 

 

 

제주식 해장국?

 

점심으론 뭐를 먹을까 하다가 어제 점심엔 중화요리를 먹었기에 오늘은 다른 걸 찾기로 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물요리(딱새우 된장찌개나 자리물회 같은 것)가 끌리긴 했는데 막상 마을에 들어섰음에도 눈에 보이는 음식점이 별로 없더라. 그때 해장국집이 보였는데 아침에도 해장국을 먹었기에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배가 무척 고팠고 심하게 부는 바람에 시달려 무척 추웠기에 자전거를 대충 받쳐놓고 아침엔 뭣도 몰라서 짜게 먹었으니 이번엔 보통 맛으로 먹어야겠다라는 심정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한 테이블에 손님이 앉아 있는데 맥주를 마시고 있더라. 그 광경을 보니 갑자기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어졌다. 평상시엔 맥주를 그다지 마시진 않지만, 국토종단을 하며 맥주의 맛을 알았던 덕에 이런 식으로 여행할 때면 맥주가 땡긴다. 그래서 해장국 하나와 맥주 한 병을 시켰다. 다행히도 이곳 해장국은 빨간 국물의 해장국이 아니라, 하얀 국물의 해장국이더라. 그건 그만큼 자극적인 맛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식탁엔 다진 마늘이 있어 구미에 따라 넣어 먹으면 훨씬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아침에 먹었던 맵고 짠 기운을 덜어내고자 마늘을 모두 다 넣어 먹었다. 아침에 먹었던 해장국과 이곳의 해장국이 같은 점은 고기와 함께 선지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선지와 양이 들어 있는 경우는 봤어도, 이처럼 선지와 고기만 들어 있는 해장국은 처음이었기에, 이게 제주식 해장국의 특징이려나 했다.

 

 

맥주를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 마시는 걸 보니, 나도 먹고 싶어 하나 시켰다.    

   

 

올레길3-B길은 언제나 특별한 추억을 남긴다

 

2011년의 제주 여행 때, 2012년의 제주 여행 때도 성산읍으로 갈 때는 제주올레길 3-B’ 코스로 달렸었다. 이 길은 섭지코지와 성산일출봉의 비경을 한눈에 보며 달릴 수 있고 자전거도로까지 잘 되어 있으며 차도 많이 다니지 않아 여러모로 하이킹을 하기에 최적의 코스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이 코스로 달렸다.

2012년에 이 코스를 달릴 땐 엄청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땐 비가 엄청 내렸고 바람까지 심하게 불었는데,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잘 달리는 반면에 승환이는 잘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뒤에서 붙어서 함께 달리고 있었는데 하필 그곳에서 펑크가 나버린 것이다. 그 전날부터 승환이 자전거만 유독 펑크가 여러 번 났기에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앞바퀴에 펑크가 나서 내 앞바퀴와 교체한 후에 먼저 보내도 된다는 점이었다. 그러면 좀 더 느긋하게 펑크를 때워도 되니 말이다. 승환이를 먼저 보내고 마을 어르신에게 부탁을 하여 어찌어찌 펑크를 때웠고 부리나케 숙소까지 달려갔는데, 승환이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그 순간 쿵 내려앉았던 마음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래서 다시 나가 승환이를 찾아 주위를 돌아다니다 보니 승환이가 저 멀리서 오는 게 보였고 함께 만나 숙소로 들어왔다. 그런 추억이 있던 길을 6년 만에 나 혼자 달리는 거다.

 

 

왼쪽은 2011년 사진, 오른쪽은 2012년 사진. 모두 성산쪽으로 갈 때의 사진이다.  

 

 

 

또 하나의 사람이 선물이 되던 순간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고 바람도 더욱 세차게 분다. 비가 오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은 바빠지지만 이 코스의 경치는 여전히 기분 좋게 만든다. 그런데 그때 이번 자전거 여행 중 최초로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금방까지만 해도 힘들어 낑낑대고 있었는데 알지는 못하지만 함께 이 길을 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를 힘이 나더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그저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만으로도 이럴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친구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으로 성산읍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월에, 그것도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있다니. 과연 그 분들에겐 어떤 사연이 있기에 지금 이곳을 달리고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의 용기가 대단해서 절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라. 공동의 경험을 하고 있기에 결코 남 같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각자 가는 길이 있기에 여행을 건강히 잘 마무리하길 바라며 앞질러 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함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불끈 솟아오르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스쳐만 가도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선물이 되던 또 하나의 순간이다.

 

 

올레길3-B길은 여전히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역시나 바닷가라 맞바람도 장난 아니게 불어 자전거를 타는 힘이 2배로 들더라. 결국 5시가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도착하여 정말 다행이다. 어찌 되었든 어제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호텔에 도착하여 쉴 수 있으니 기분이 좋다. 명색이 호텔이란 이름에 걸맞게 편의점이나 오락실과 같은 시설이 함께 붙어 있고 수영장도 있다. 그런데 각 방마다 시켜 먹을 수 있는 배달음식이 두 가지(피자와 치킨)로 정해져 있고, 한 방에 2마리까지만 가능하다고 제한되어 있으며, 냉장고엔 음료수는커녕 물조차 없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저녁으론 어제 남은 통닭을 먹고 편안하게 누워 가계부를 정리한 다음에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사람이 선물이 되던 순간을 둘째 날에 여러 번 느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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