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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9.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기 - 19.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건방진방랑자 2019. 10. 2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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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처절하게 외로워져라

 

 

난 여행인데도 멋진 풍경을 볼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무작정 달릴 때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오며 내 몸은, 나의 감정은 사시나무 떨 듯 떨렸다. 외로워지고 싶었지만 막상 외로움이 밀려드니, 그 감정을 주체하질 못하겠다. 이래서 사람인 거겠지.

 

 

 우도의 풍경에서 밖을 내다 보고 찍은 사진. 사무치게 외로움이 밀려온다. 

 

 

 

외로움에 사무치는 이에게 주는 선물

 

그래도 때론 외로워질 필요도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야만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외로워져야만 좀 더 내가 처한 상황이 명확하게 보이고 내 자신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나란 사람은 참으로 누군가의 평판이나 기대에 한없이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좋은 평판을 받기 위해 늘 눈치를 봤었고,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정작 하고 싶던 일들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은 평판을 들으면 행복해했고, 나쁜 평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우울해했다. 하지만 최근에 맹자란 책을 다시 읽다 보니, 이런 나를 준엄하게 꾸짖는 글이 있더라. 아래에 인용한 글을 읽어보자.

 

맹자께서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나를 기리는 경우도 있고, 완전하려 노력했으나 그럼에도 나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孟子曰:“有不虞之譽, 有求全之毁.”

 

(이하는 주희가 쓴 주석) 여씨가 행동이 부족하여 기릴 거리는 없으나 우연히 기림을 받는 경우를 일컬어, ‘불우지예(不虞之譽)’라고 말한다.

헐뜯음을 면하려 노력했으나 도리어 헐뜯음을 당하는 경우를 일컬어 구전지훼(求全之毁)’라고 말한다.

기림을 받거나 헐뜯음을 받는다는 말은 모두 다 제대로 된 평가라고 할 수는 없으니, 수신하는 자라면 이것(평판)으로 갑자기 기뻐하거나 슬퍼해선 안 되며, 남을 판단하는 자라면 이것(평판)으로 가벼이 (판단 받는 이를) 등용하거나 내쳐선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呂氏曰:“行不足以致譽而偶得譽, 是謂不虞之譽.

求免於毁而反致毁, 是謂求全之毁.

言毁譽之言, 未必皆實, 修己者不可以是遽爲憂喜. 觀人者不可以是輕爲進退.” -離婁章句上21

 

 

노력과 상관없이 칭찬을 받는 상황이나 애썼지만 비난을 받는 상황이나 결국은 도긴개긴이란 말이다. 대충 대충했음에도 누군가는 그런 나를 한껏 치켜세우며 정말 멋있다라고 말하기도 하며, 무진장 애썼지만 주위에서 비난의 소리가 들려오며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대해선 오히려 자신의 공으로 치켜세우며 나를 제대로 평가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좋게 평가하면 기쁘게 받아 넘긴다. 하지만 누군가의 헐뜯음은, 특히나 애썼는데도 그걸 철저히 무시하고 헐뜯는 경우엔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고 솟아오르는 감정에 어쩔 줄 몰라 한다. 물론 이건 누군가의 얘기가 아니라 나의 얘기다. 이런 나이기에 늘 행동은 소시민적으로 했고, 감정은 소극적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타인의 한 마디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할 때가 많다. 난 더욱이 그런 것에 쉽게 휩쓸린다.  

 

 

하지만 맹자는 예리하게도 뜻하지 않은 칭찬이든 애썼음에도 받게 되는 헐뜯음이든 결국엔 같기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그건 어차피 나와는 다른 누군가의 평판에 심히 휘둘린다는 뜻이고, 그 누군가가 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그를 인정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한껏 외로워지고 나니 여태껏 읽어왔지만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던 이 말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해주는 말인 걸 알겠더라. 그리고 이 말이 나에게 해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가 애써 외친 것처럼 좀 더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겠더라. 그래야만 내 행동에 대해 당당해질 수 있고, 내 생각에 대해 떳떳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야 맹자가 그렇게 외쳤던 호연지기浩然之氣 가득한 대장부로서 한 세상 호령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만큼 여행을 떠나온 이곳에서 이 순간을 맘껏 누리며 신나게 앞을 향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우도에 들어와 낯선 경험을 하고 새로운 음식을 먹어본 이 순간이 귀하단 생각이 들었다.

 

 

익숙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주에 왔고 지금은 우도까지 기어들어왔다.  

 

 

 

떠난 장소에서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을 해보라

 

여기에 덧붙여 여행에서 빼놓아선 안 되는 게 있다. 그건 바로 낯선 이와 만나는 것과 그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음식을 먹는 것, 그리고 그곳의 역사를 흡입하는 것이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내가 살아왔던 장소를 떠나는 것을 말한다. 그건 자연히 익숙함과의 결별일 수밖에 없고, 친숙함과의 이별일 수밖에 없다. 익숙함은 그곳에서 살아왔기에 내가 어떤 삶의 문법에 갇혀 살아왔는지를 잊게 하며, 친숙함은 늘 알아오던 이를 만나왔기에 어떤 식으로 관계 맺기 했는지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그런 상황에 오래 있다 보면 생활은 몸에 습관처럼 달라붙어 어떠한 긴장도 사라지게 하며, 사람은 내 생각과 딱 맞아떨어져(물론 이건 착각이다) 감흥도 증발되게 한다. 그게 바로 무료함이고 단조로움으로, ‘내 삶이 쳇 바퀴를 굴리고 있는 햄스터와 다를 게 없다는 자책으로 이어지게 한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떠나야 한다. 익숙함과 친숙함의 공간과 관계에서 떠나 전혀 새로운 문법의 공간과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그럴 때 희미하게 꺼져 가던 의욕도 되살아나고, 잃었던 열정도 활활 타오르게 된다.

 

 

떠나 처절하게 외로워지고 그 순간에 달라붙어보자.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저 떠났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군가는 가족끼리 몇 박 며칠 동안 여행을 다녀왔지만, 그저 일상에서 느끼던 감정만을 반복적으로 느낀 채 대판 싸우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으며, 누군가는 업무 차 떠난 해외여행에서 일만 하느라 평소보다도 더 많이 피곤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장소만 벗어났다고 해서 새로운 감정이 드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장소를 떠나는 건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떤 게 필요한 걸까? 그건 떠난 장소에서 일상에선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을 하는 것이다. 늘 남의 이목이 신경 쓰여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던 것들, ‘~~한 사람이야라는 자기규정 탓에 미처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하면 된다. 춤을 춰본 적이 없는 사람이 춤을 춘다던지, 새로운 사람 앞에선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낯선 이와 한껏 어우러져 대화를 나눈다던지 하는 행동 말이다. 나의 경우엔 카자흐스탄 여행 중에 결혼식에 참여하여 밤늦도록 이야기했던 경험이나, 작년 재즈 콘서트 때 아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악에 몸을 맡겼던 경험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과 만나야 하고, 전혀 맛본 적이 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한 번도 관심 가져보지 못한 그곳의 역사에 빠져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다. 제주에 온 그대, 우도에 온 그대, 맘껏 이 순간에 빠져들고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누리시라.

 

 

카자흐스탄 결혼식과 재즈 콘서트에서의 사진. 삶의 즐거움이 샘솟던 순간이다.  

 

 

인용

목차

사진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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