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는 지금 내가 아주 애용하는 말이 되었다. 전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힘에 부칠 것 같은 일을 계획할 때, 혹은 무언가 조금 늦었다고 생각될 때, 그래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내가 나에게도 하는 말이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면 십중팔구는 허우적거리다 죽는다. 그런데 사람이면 누구나 물에 뜨게 돼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순전히 자기가 수영을 못한다는 ‘생각’이 일을 그르친 것이다. 너무 억울한 일이 아닌가. 원래부터 할 수 있는 일이건만 단지 ‘난 못해’하는 생각 때문에 할 수 없게 된다면. 그런 억울한 일을 원천봉쇄하는 주문이 바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다.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일단 해보자 하고 덤비면 가속도가 붙고 자신도 모르는 괴력이 나온다. 물론 열심히 해봐도 안 되는 일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면 적어도 후회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하고 후회하는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훨씬 많은 법이니까.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고만 있었던 일이 있다면, 지금 한번 해보라. 눈 딱 감고 저질러보라. 될지 안 될지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는가. (...) 가는 길 포기하지 않는다면 꼴찌도 괜찮은거야. -31쪽
이건 누가 시키거나 지켜봐서가 아니라 순전히 내가 좋아서하는 일이다. 한번 걸어보기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과 약속한 알이니 틀림없이 끝까지 갈거다. 얼마나 거리든 간에. 그러니 꼴찌라도 괜찮은 거다. 가는 길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항상 다른 사람이 절 돕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특별한 대접을 받을 때, 제 인간적 가치가 높아서라고 우쭐거리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늘 범사에 감사하면서 조금씩 미안해하면서 살 수 있도록, 제가 오만해지려고 할 때마다 부디 함께 해주시옵소서.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제게 들이고 있는 공을 잊지 않게 하여주시옵소서. -206쪽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난초를 키우는 일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시간과 정성을 들인 만큼 아름다운 꽃을 얻을 수 있듯 좋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인연의 싹은 하늘이 준비하지만 이 싹을 잘 키워 튼튼하게 뿌리내리려 하는 것은 순전히 사람의 몫이다. 인연이란 그냥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자라는 야생초가 아니라 인내를 가지고 공과 시간을 들여야 비로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한 포기 난초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와 친한 사람이면 귀가 무르도록 들었을 ‘한비야 난초론’이다.
남과의 관계가 난초를 키우는 공이 들진대, 하물며 이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자기 자신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나 자신과 사귀는 것도 비슷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굳이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예로 들지 않아도 자신을 제대로 알기란 무척 어렵고, 따라서 자신과 잘 지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역시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그 노력의 첫 번째는 일기 쓰기다. 국가에는 국사가 있고, 세계에는 세계사가 있듯이 개인에게는 개인사가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일기장이다. 일기를 쓸 때는 데이트하는 것처럼 행복하다. 노트와 연필이 애인이 되어 그날 좋았거나 자랑스러운 일을 뻐기면 같이 기뻐하고, 억울하거나 가슴 아픈 일은 같이 슬퍼한다. 반성도 하고 다짐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온 일이라 일기를 쓰지 않으면 속이 답답해지는 증세까지 나타난다.
두 번째는 여행이다. 그것도 지금처럼 혼자 떠나는 여행. 만나는 모든 상황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깨지고 있다. 또 일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고 때때로 예상치 않게 멋진 자신을 만날 수도 있었다.
나는 나에게 편지도 쓴다. 대학 들어가기 전 영어와 한국어를 교환 공부하던 영국인 선교사에게 배운 ‘삶의 기술’이다. 무언가를 결정해야할 때, 판단이 흐려질 때는 훌쩍 여행을 가서‘사랑하는 비야에게’ 혹은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정말 알 수 없는 너에게’로 시작하는 긴 편지를 쓴다. 설득의 말을 할 때도, 맹렬히 비난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네가 아무리 미운 짓, 엉뚱한 짓을 해도 어떤 결정을 내린다해도 널 사랑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는 톤으로 끝난다. 그러고는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는다. 며칠 후 배달된 편지를 받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을 하는데 ‘나에게서 온 편지’는 많은 경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46p쪽
나는 이후에도 지금처럼 내가 운이 좋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도 내 몫의 어려움과 절망이 분명히 있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때가 온다 해도 쉽사리 좌절할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거 꽤 힘이 드네., 그러나 이런 것쯤에 무릎 꿇을 수는 없지.’ 좌절이란 무엇인가, 꺾여 주저앉는다는 말인데 누구에게 꺾인다는 것이고, 무엇이 나를 주저앉는다는 말인가.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인데 말이다.
좌절은 다름 아닌 자기를 믿지 못해서 희망이 없어진 상태이다. 그것이 좌절의 정체라면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은가. 이 아이들(난민촌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함)처럼 스스로 희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끝까지 노력할 자신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노력하는 자신을 사랑한다면 좌절이란 없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90쪽
할머니는 비록 일자무식이라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듯하다. 서로 돕고 도움을 받는 것. 나는 그동안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받지도 않고 사는 것이 제일 공평하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행을 다니면서 절실히 느낀다. 세상은 안 주고 안 받는, 혹은 주는 만큼만 받고 받는 만큼 주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람에게는 많이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많이 받는다는 것, 그렇게 돌고 돈다는 것을. -153쪽
‘발로 뭔가를 하는 사람들은 하고 있는 일을 온 몸으로, 혼신을 다해 우직하게 하는 사람들이에요.’(박상남 사진작가의 말) 발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은 약지도 못하고 융통성도 없다. 날아갈 수도 건너뛸 수도 없다. 지금길도 없고 남의 힘을 빌릴 수도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저 제 힘으로 한 발 한 발 묵묵히 자기 길을 갈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알고 있다. 그 한 걸음, 한 걸음, 그 작아 보이는 힘이 사실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그리고 제 발로, 제 힘으로 땀 흘려 무언가를 일궈냈을 때 저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그 충만한 행복감을. -164쪽
그런데 긴 여행을 하면서 ‘이 나이에’라는 강박관념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세상에는 각자 자기만의 속도와 진도가 짜여진 주관적인 시간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 우흐르봉을 오를 때의 일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산에 가는 산쟁이고, 누구보다도 빨리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등산길을 단숨에 올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이드가 정상에 오르고 싶으면 무조건 ‘뽀올레, 뽀올레(천천히)’ 걸어야 한다기에 억지로 천천히 걸으니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뛸 듯이 빨리 가고 있는 것을 보니 더욱 그랬다.
그러나 3일째부터 가이드가 왜 그러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를 앞질러 가던 많은 사람들이 고산증 때문에 도중에 포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5,895미터 우흐르봉 정상에 도착했을 때, 거기에는 근육질의 건장한 젊은이들보다 놀랍게도 할머니, 장애인 등 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목표가 있다면, 그리고 자기가 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확신만 있다면, 남들이 뛰어가든 날아가든 자신이 택한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나이에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시작한 일을 끝까지 꾸준히 했느냐는 것이다. -176쪽
“도전은 나를 끊임없이 앞으로 몰아대는 채찍질과 같다. 위험은 인생에 있어 양념과 같다. 여행이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로 떠나는 소풍이며 어려움들이 나를 자극한다. 나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그 따끔따끔한 만족이 필요하다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100년전에 지구를 한 바퀴 돈 엘라 마일라르트의 말
내가 하고 싶은 말 그대로다. 마치 내 일기장을 베껴놓은 것 같다. 난 여기에 감히 한마디 덧붙인다.
“위험할 수도 있는 도전을 행동으로 옮길 때, 만의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무넹 그렇지 않을 9,999번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249쪽
이런 전문가(한 분야에 일가를 이룬 이)들은 어느 분야이든 간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죽을 힘을 다한다는 것이다. 대충대충이란 절대 없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뭐 저만한 일에 목숨까지 내놓느냐 하더라도 보인에게는 그 순간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거다. 죽기를 각오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도 필사적으로 질주하는 경기 중에는 그렇게 든든하고 멋질 수가 없다. 바둑의 조치훈, 棋聖 역시 한 판 한 판에 목숨을 건다고 한다. 조 기성이 목숨을 걸고 두는 바둑은 엄밀히 말하면 먹고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가벼운 여가 선용이라 할 수 있는 ‘노는 일’이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둑을 두는 그의 모습은 구도자처럼 성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게 목숨을 걸어야 각자가 받은 잠재력을 최대치로 개발할 수 있나보다. 아니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나보다. -263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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