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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중국견문록, 한비야, 푸른숲, 2001 본문

책/밑줄긋기

중국견문록, 한비야, 푸른숲, 2001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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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어도, 목표는 하루에 한 발짝씩 걸어가야만 도달할 수 있다.

 

잘하려면 싸우지 말고 놀아야 한다니? 이게 무슨 천지개벽할 말인가. 여태껏 우리는 무엇을 잘하려면 그것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배웠다. 항상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그래야 뭔가 이룰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여행도 진이 빠질 때까지, 일도 이를 악물고, 공부도 눈에서 피가 날 정도로 했다. 그래야만 성에 차고 내심 뿌듯했다. 뭐든 싸워 이기려 했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잔뜩 긴장한 채 싸웠던 실체는 일 자체가 아니라 이었다. 남보다 늦었다는 생각, 남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 그러나 기초 공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불안감, 긴장된 표정과 태도는 다름 아닌 부실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갑옷이었다.

이제는 알겠다. 왜 세상에는 이를 악물고 사는 사람보다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누리면서 사는지를, 이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과 무작정 싸우는 대신, 잘 사귀면서 재미있게 놀 줄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아니 이제부터 그렇게 살아야겠다. (輕松輕松)

명색이 학생이니 덥다고 본분을 게을리할 수는 없는 법. 공부에도 요령이 있다. 머리도 식히고 신나게 놀면서 재충전도 하고 동시에 공부하는 법이 있다면? 당연히 귀가 쫑긋해질 것이다. 그 비법은 여행이다.

집에 있는 빼꼼이보다 돌아다니는 멍청이가 낫다라는 말이 있다. 책에서 배운 것, 신문, 방송, 영화에서 수없이 보고 들은 일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온 몸으로 겪어내는 것만큼 효과적인 공부는 없기 때문이다.

 

너무 느긋하게 공부하는 건 성에 차지 않는다. 못하는 반에서 잘하는 것보다 잘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에서 조금 기죽으면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거다. 못한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지만.

 

느긋하기도 하다고? 그래서 언제 남들처럼 살아보겠냐고? 나도 한 때는 남들보다 늦는 것이 조바심나서 바들바들 떨면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는, 독자적인 삶을 꾸려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파키스탄의 낭가파르바트, 네팔의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를 오를 때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반드시 자기 속도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 보여도 정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체력 좋은 사람이 뛰어오르는 것을 보고 같이 뛰면 꼭대기까지 절대로 갈 수 없다. 반대로 어린이나 노약자들의 속도로 가면 반도 못 가서 지치고 만다. 억울하지 않은가. 자기 속도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부단히 올라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쓸데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체력과 시간을 낭비하느라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다면.

 

저 국화는 묵묵히 때를 기다릴 줄 아는구나. 그리고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저렇게 아름답게 필 줄 아는구나.

가을에 피는 국화는 첫 봄의 상징으로 사랑받는 개나리를 시샘하지 않는다. 역시 봄에 피는 복숭아꽃이나 벚꽃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여름 붉은 장미가 필 때, 나는 왜 이렇게 다른 꽃보다 늦게 피나 한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준비하며 내공을 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매미소리 고치고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 드디어 자기 차례가 돌아온 지금, 국화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그 은은한 향기와 자태를 마음껏 뽐내는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늦깎이라는 말은 없다. 아무도 국화를 보고 늦깎이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뒤처졌다고 생각되는 것은 우리의 속도와 시간표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기 때문이고, 내공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직 우리 차례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철에 피는 꽃을 보라! 개나리는 봄에 피고 국화는 가을에 피지 않는가.

 

나는 낙수가 바위를 뚫는 그 한 방울 한 방울의 힘을 믿는다. 한 발짝 한 발짝이 모여 마침내 산꼭대기에 이르는 그 한 걸음의 힘을 믿는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가는 것이 훨씬 빠르고 확실한 길이라는 것도 굴뚝같이 믿고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가? 그렇다면 가지러 가자. 내일 말고 바로 오늘, 지금 떠나자. 한꺼번에 많이는 말고 한 번에 한 발짝씩만 가자. 남의 날개를 타고 날아가거나, 남의 등에 업혀 편히 가는 요행수는 바라지도 말자. 세상에 공짜란 없다지 않은가.

 

어린이들은 빨리 간섭받지 않는 어른이 되었으면 한다. 중고등학생들은 하루 빨리 시험 지옥에서 벗어나 대학생이 되었으면, 대학생들은 빨리 졸업을 하고 취직을 했으면,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빨리 정년퇴직을 해 한가롭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항상 한발짝 앞을 갈망한다. 오늘을 즐기지 못하고 내일만 생각하며 사는 거다. 오늘이 없으면 내일도 없다.

 

이제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일이 아주 엉뚱한 것일 수도, 전혀 실현 가능성이 없을 수도, 혹은 흔히 말하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제외시켜놓은 것도 있을 수 있다.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을 거다. 하지만 어떤 경우도 완벽한 지도를 가져야 길을 떠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성인이나 비범한 사람들이야 가야할 길이 시작부터 끝까지 뚜렷이 보이겠지만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하나의 길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 길이 보이는 거니까. 하찮은 일이라도 좋다. 원래 하려고 했던 일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여도 좋다. 지금 이 순간,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 일을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그 길이 다른 길로, 그 다른 길이 다음 길로 이어져 마침내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에 다다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굴뚝 같이 믿는다. 항상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면 말이다.

 

누구든지 주어진 시간과 노력과 능력과 체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상위 1,2,3(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에 순위를 매긴 것)은 할 수 있다는 것이 내 믿음이다. 한정된 시간과 힘을 어떻게 쓸지만 잘 생각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런 문제로 고민할 때마다 한 가지 비유를 생각하곤 한다. , 자갈, 모래와 항아리가 하나씩 있다. 세 가지를 한꺼번에 조금 큰 항아리에 넣으려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만약 모래부터 채워 넣으면 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그러나 돌부터 넣고 나중에 자갈, 모래 순으로 채우면 다 들어간다는 거다. 하고 싶은 일도 마찬가지다. 제일 하고 싶은 일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모래 같이 작은 일에 중요한 시간을 다 뺏기로 만다. 순서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인용

목차

돌아다니는 멍청이를 꿈꾸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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