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통계라고 하던데 1083, 819, 577, 521, 476, 471, 412, 405, 403, 341 …… 이게 부동산 소유 순위 상위 10명이 가진 집 숫자랍니다. -447p
지금은 누구도 자기를 안 돌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챙기는 거예요. 그런데 남태평양의 어느 원주민 사회를 보면 젊은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으면 노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다 나눠줘요. 노인들은 젊었을 때 자기한테 물고기를 나눠줬던 사람들이고, 아이들은 자기가 노인이 됐을 때 물고기를 나눠줄 사람들이에요. 이게 공동체예요. 소유의 형식과 사뭇 달라요.
인류학 책을 왜 많이 봐야 하냐면,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까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몰라요. ‘소유 형식의 문제야’라고 하면 ‘안 그런 게 어디 있어?’라고 반문해요. 그런데 인류학 책을 보면 지금 우리 문명의 흐름과는 다른 사회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소유 형식의 필연적이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452
피해자의 보수성이나 피해자의 폭력성에 주목해야 해요. 여성운동도 피해자적 운동이지만 어느 순간 가해자적 운동으로 변할 수 있어요. 민족주의도 그렇게 될 수 있고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와 싸우다가 만들어졌잖아요. 그러면 제국주의가 사라졌을 때 해체돼야 하는데, 우리는 해체를 못 해서 이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폭력으로 변질돼요. 여성운동도 가부장제하에서 그렇게 될 수 있어요. 폭력으로 화할 때 어느 시점에서 여성주의라는 갑옷을 벗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죠. 이 여성주의라는 갑옷이 다른 사람을 찌르는 무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460
기 드보르 『스펙터클 사회』 “스펙터클 사회에서는 특권적인 인간 감각을 당연히 시각에서 찾는데, 다른 시대에 그 특권적 인간 감각은 촉각이었다.”
권력과 자본이 우리를 통제하려면 우리를 시각 중심적 인간으로 만들어야 해요. 볼 수 있는 것만 소유할 수 있거든요. 예컨대 음악은 소유할 수 없지만 눈에 보이는 CD는 소유할 수 있잖아요. 소유하려면 시각화시켜야 해요. 시각화는 소유의 핵심이에요. 따라서 시각이 붕괴되면 소유도 붕괴돼요. 내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시각의 세계가 곧 자본의 세계이기도 한 거죠.
또 하나, 시각의 세계는 정치의 세계예요. 왜냐하면 보는 자는 우월하고 보이는 자는 열등하거든요. 그래서 높은 사람에게 눈 깔고 고개 숙여 인사하는 거예요. 안 보고 숙이는 것은 목을 쳐도 된다는 거예요. 굴복의 의식이죠. 골목길에서도 힘센 형들이 눈 깔라고 하잖아요. -475
시각의 세계는 저주받은 세계라니까요. 체제가 우리를 길들이려고 하는 이미지는 두 종류인데요. 하나는 우리를 공포로 몰아가는 CCTV 영상, 범죄 영상, 전쟁 장면, 혹은 MRI 같은 진단 영상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물건을 사도록 부추기고 유혹하는 이미지예요. 공포를 주거나 유혹하는 이미지, 이 두가지예요. 유혹하거나 쫄게 하거나 둘 다 효과는 똑같아요. 쫄아도 타인과 사랑하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도 살아 있는 타인을 사랑하지 못해요. 시각 문화라는 것을 협소하게 보면 안 돼요. 시각은 정치가 가능하고 경제가 가능한 곳이에요. 시각적 세계는 본질적으로 정치, 경제적인 의미에서 소유의 세계예요. -475
자본주의의 원리 중 하나가 고립되고 분리돼야 소비가 촉진된다는 거예요. 개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예요. 예컨대 형이 입었던 옷을 쭉 물려 입는데, ‘나는 나만의 개성이 있어’ 이러면 옷을 따로 사야 하잖아요. 자본주의는 자유롭게 소비하도록 우리를 쪼개요. 더 심각한 것은 개인의 내면도 쪼갠다는 거예요. 개인의 내면을 분열시키는 거예요. 직장인으로서의 소비, 딸로서의 소비, 기타 등등으로 소비를 쪼개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관계가 많으면 소비가 많아져요. 왜냐하면 그 인간관계에 따라 자아의 형식을 정해야 하니까요. -477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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