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에 따르다가 타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착취하여 자기 배를 불린다는 사실을. -120쪽
개인 차원의 자선은 아무리 좋은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경제적 불공정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없다. 눈앞에 닥친 긴급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무조건적인 재정 보조는 수혜자를 그것에 길들게 만들어 결국은 자생 의지를 꺾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갈런드 기금은 급진적 단체들에게 ‘자생력’을 부여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기금 보조는 그 단체들을 영원한 구걸꾼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125쪽
부를 피하지 않고 되레 그것을 추구했더라면 나는 분명 안이한 삶에 말려들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명은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나는 존 러스킨의 금광업자 같은 종말을 맞았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가지고 돌아가는 금광업자는 육로로 여행을 하면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 바다를 통해 동부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배가 해안에서 멀어졌을 때 폭풍이 인다. 금광업자는 가지고 있던 금을 띠를 이용해 허리에 두른다. 배가 가라앉는다. 금광업자는 묵직한 허리띠를 찬 채 배에서 뛰어내린다. 러스킨은 묻는다. “금덩이의 무게에 눌려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으니,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인가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인가?” -126쪽
안정과 안락, 편리, 그리고 육신의 욕구 충족은 다 소수 독재정치가 자신의 희생자들을 잡는데 이용하는 미끼라는 것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창조적인 삶과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이행하는 데 가장 만만치 않은 걸림돌로 작용한다.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질문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삶의 수단이나 목표가 비열하고 저급하다면, 그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며 자존심을 유지할 수도 없다. 지식을 습득하고 이용하는 데에도 올바른 동기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 지식을 말과 행동에 적용하고 생계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이 마지막 명제는 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
“바른 생활이란 다른 모든 생물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이 되는 옳은 일에 종사하는 것이다.”
좋은 교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는 관계되는 사실들을 끌어들여 논리적인 결론을 낼 줄 알아야 한다. 교실 안에서건 밖에서건 사람들이 묻는 질문에 사실에 입각해 철저하고도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활동을 보장하는 것을 “학문의 자유”라 한다. 양심 있는 교사라면 이 같은 의무를 한 시도 게을리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시 나는 학교 밖과 학교 안에서의 활동에 전혀 차이를 두지 않았다. 대학의 학사업무와 바깥세상의 활동은 모두 동시대적 과정의 일부였다. 나는 이 둘을 적절한 관계로 통합하여 대학 내의 일을 현실 세계의 일부로 끌어 들이고, 바깥세상의 사건들을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키려고 노력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고, 역사 감각, 방향 감각, 목적의식, 그리고 가능하면 올바른 삶에 대한 인식을 불어넣으려고 애를 썼다. -133쪽
역사학부의 윌리엄 E 링글바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자중자애하게. 자넨 지금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야.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나 전념하고 월급이나 꼬박꼬박 챙기도록 하게. 기회가 오면 승진도 하고, 인세 수입이나 관리하고 말일세. 말 많은 문제들은 아예 거론할 생각도 말고, 정치가들한테 맡겨.”
현실적으로 보면 더없이 타당한 충고였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그동안 지켜온 세 가지 기본원칙(진실을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고, 사회에서 진실을 구현하는데 일조한다.)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내가 속한 사회에 착취와 부패가 존재한다면, 나는 그것에 대항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결국 나는 링글바크의 충고를 거절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지들과 뜻을 같이 했다. -136쪽
(스콧이 강연 전에 자신을 겸허하게 되돌리도록 발췌하여 읽은 글)
하나는 슈리 라마크리슈나의 글을 옮겨 적은 것이다.
‘인간은 지식이 일천한 동안은 가르치고 설교하러 돌아다니지만, 완벽한 지식을 습득했을 때는 자신의 지식을 쓸데없이 과시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로망 롤랑의 「파리의 장 크리스토프」에서 뽑은 글이다. ‘연단에 서서 말을 하다 보면 십중팔구는 생각을 왜곡하게 되어 있다. 연사가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을 경우, 표정과 말투, 태도,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등을 꾸미기 시작해 차츰 정신적 사기행위로 옮아갈 위험이 있다. 강연이란 따분한 희극과 점잖은 현학 사이를 어슬렁거리는 일이다. …… 그것은 몇 백 명의 침묵하는 군종(실제로는 아무에게도 맞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치수가 맞는다고 하는 기성복) 앞에서 외치는 독백이다.’
세 번째 발췌문을 제공한 사람은 그 자신이 강연자였던 소로이다. ‘설교자들과 강연자들은 허수아비들을 상대한다. 그들 자신이 허수아비인 탓이다. …… 청중은 예언자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어떤 자극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재미이다. …… 그들의 원하는 것은 진실과 독립성, 인격을 제외한 인간의 모든 것이다.’ -157쪽
이렇게 따져보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 뿐이었다. 해직으로 인해 나는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 임무를 띠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인생역경대학’에서는 해직이 곧 승진이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서른넷의 나이에 나는 성숙한 성인의 단계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해직이 곧 승진이요, 사회과학자이자 교사로서의 내 경력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으며, 제국주의 박사학위와 문명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는 이전에 경제학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했던 것처럼 새로운 단계에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61쪽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375쪽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지 않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한도가 없는 게임이다. 우리는 돈을 벌려고 애쓰는 대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년 1년을 그럭저럭 지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현금이 얼마지?” 우리는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하여 필요한 현금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어들일 수 있을 만큼만 환금 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일단 목표액이 채워지면 다음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생산을 중단했다. -379쪽
소박하고 알뜰한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해 주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얘기해 보겠다.
① 짐은 자기 혼자 쉽게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챙겨라. 최소한의 옷가지와 사무용품과, 필기구만 있으면 된다.
② 1등석에서 편안하게 여행하지 말고 3등석에서 고되게 여행하라. 화려한 미국식 생활을 피하고 현지 숙박시설과 시장을 이용하라.
③ 식당을 출입하지 말라. 요리할 일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대신 과일과 견과와 그 밖의 신선한 자연식품을 먹어라.
④ 술, 담배, 청량음료, 커피 같은 습관성 기회식품을 끊어라.
⑤ 택시를 피하고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라.
⑥ 여가시간에는 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운동을 하고 많이 걸어라. 그러면 의료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나 아는 사람을 위해 과외활동을 할 수 있는 운이 따르기도 한다. -38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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