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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야생초 편지, 황대권, 도솔, 2002 본문

책/밑줄긋기

야생초 편지, 황대권, 도솔, 2002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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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만물이 다 그렇겠지만 식물이 자라고 영그는 데는 다 때가 있다는 것이지. 요놈이 본 줄기 양쪽에 코딱지만 한 눈을 처음 틔웠을 땐 저놈이 언제나 자랄까 하고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 싹은 2개월이 되도록 별로 자라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러다가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7월이 되면서 겁나게 자라기 시작하는데, 자고 일어나 보면 구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싶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더러 아무리 공부해라 뭐해라 하고 부모가 야단을 친들, 때가 아니되면 아무 소용이 없어.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언젠가 자신의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힘을 기다려 인내하고 있어야지, 조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아야 치맛바람밖에 더 되겠니? 또 그 억지야말로 아이를 죽이는 횡포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제 너도 곧 학부모가 될 사람이니 명심하길 바란다.

 

그림을 그리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한 번으로는 대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상을 아무리 수십 수백 번 들여다보아도 직접 그려 보지 않고는 제대로 파악한 것이 아니다. ‘百聞而不如一見이란 말이 딱 맞는다. 그런데 한번 그려 봐서는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그려 보면 처음 그린 것이 얼마나 허술하고 엉성한 것인지 알게 되지.

또 한가지. 디테일과 전체와의 조화 문제. 디테일 처리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리다보면 전체적 조화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초보자들은 디테일이 모여서 전체적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고 디테일에 치중을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디테일은 전체와의 관련 속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한 번 그려 놓고 꼭 전체와의 조화 속에서 디테일을 그려 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첫째, 실천의 중요성, 실천은 하되 지속성이 있어야 할 것. 둘째, 어떤 일을 할 적엔 반드시 전체와의 연관 속에서 그 일을 추진할 것. -74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動的平衡상태라는 것이지. 사회가 평화롭다,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고 할 적에는,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어 있다는 뜻이 된다. -109

 

나는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연요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젊었던 시절에는 상대방과 대화할 적에 자기 의견을 먼저 말하고 싶어서 허겁지겁 하곤하여 자주 대화의 맥을 끊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떤 호흡이랄까 리듬이랄까 하는 것을 대화 중에 잡아내어 그 흐름 속에서 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하니 나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해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말하자면 自然流를 터득한다고나 할까? 해서 나이가 들면 저절로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가 보다.

 

그림을 그리다보면 무작정 정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된다. 하다가 잘 안되면 좀 쉬는 게 최선이지. 쉬긴 쉬만 머릿 속으로 그 그림을 계속 그린다. 그러나 어떤 때는 잠시나마 그림 그린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다른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때, 문득 그 그름이 그려지고 싶은 거다. 무심코 붓을 잡는다. 그림이 놀랄 정도로 잘 된다. 한동안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전에는 몰랐던 테크닉이 저절로 구사되기도 하고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았던 색깔이 어느덧 만들어지기도 한다. 바둑 공부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나는 이것을 무위에 의한 학습이라고 이름 붙였거니와, 학습에 있어서도 무리함이란 결코 도움이 안 됨을 깨닫게 되었단다.

돌이켜보면 실제로는 그리지 않고 있었어도, 관념 속에서 또 손안에서 그림 그리기는 계속되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괜찮다 싶게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결코 나의 의지로만 그려진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네 삶은 일정부분 우리가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어떤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고 있음을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림이 잘 되었을 때 스스로 대견해 하기 보단 신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단다. -223

 

상대의 하는 양이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갖은 비판과 욕설을 서슴없이 해대고, 심지어 그를 매도하기 위해 중상모략도 서슴지 않고 있다. 사람마다 각기 나름대로의 대응양식과 습관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왜 그것을 인정해 주지 못하는 것일까? 남성과 여성, 어른과 아이, 선배와 후배..... 이 둘 사이의 바이오리듬이 다 다른 데도 우리는 자기만의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고 있다.

사람을 생긴 그대로 사랑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겠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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