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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열광, 김정운, 프로네시스, 2007 본문

책/밑줄긋기

일본열광, 김정운, 프로네시스, 2007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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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항상 선택적이다. 내가 기억하는 나는 실제 내 삶에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내게 유리한 것들로만 구성되는 기억의 게슈탈트다. …… 이러한 기억의 선택적 구성을 통해 자기 아이덴티티가 성립된다. 자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자기 자신이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 -105

 

아이들은 배변 훈련을 하면서 처음으로 처벌을 경험한다. 아이는 처벌 때문에 더 이상 본능적 욕구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현실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ego, 즉 자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우리 자의식은 회초리를 피하기 위한 잔머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평생 지속된다. -147

 

심리학자인 내게, 인류 역사의 가장 의미 있는 심리학적 발견을 하나만 이야기하라면 주저없이 원근법의 발견을 들겠다. 원근법의 발견은 시선의 주체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시선의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인다는, 시선의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다. 가까운 것은 크게 보이고, 먼 것은 작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것은 분명하게 보이고, 먼 것은 흐리게 보인다. 이러한 원근법의 인식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응용되기 시작한다.

관점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관점의 주체에 대한 인식은 화가 마음대로 그림의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해주었다. …… 변화 가능한 관점이 발견되자, 인간의 상상력은 그야말로 날개를 달고 끝없이 치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 각 개인의 관점을 포괄하는 객관적 관점에 대한 인식이 바로 근대 과학을 가능케 했다.

아동이 자라면서 자신의 시선과는 다른 시선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알아보는 시기가 바로 그 때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시선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사실, 즉 시선의 방향이 맥락에 따라 분리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4세 가량이 되면 아동은 추상적 사건, 즉 관점이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158

 

기차의 기술적 발전은 인간과 기차 사이의 빈틈을 줄였다. 기차 부속들의 빈틈이 사라질수록 기차를 운전하고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는 인간 조직 사이의 빈틈도 줄어야 한다. 인간이 기계들의 빈틈을 메워야 하는 것이다. 한 개인의 행위로 갈수록 세분화되어 시스템의 빈틈을 메우는 단순한 기능으로 환원된다. 영화 철도원은 이러한 근대 기차의 기술 발전과 인간 행동의 빈틈 메우기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193

 

내가 당신을 보고 싶다라고 했을 때, 내가 말하는 보고 싶다의 의미와 당신이 이해하는 보고싶다의 의미가 동일한 것이라고 도대체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사전을 보고? 그럼 사전에 기록된 보고 싶다를 설명하는 수많은 단어들의 의미를 내가 이해하는 방식사전 편찬자의 의도가 동일한 것이라고는 도대체 누가 또 보장해주는가? 이런 식으로 가면 끝이 없다. 어딘가에는 나와 당신이 대상을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을 보장해주는 상호 이해의 지원, 즉 상호주관성의 시작이 있어야 한다.

상호주관성은 동일한 정서적 경험에서 출발한다. 이 동일한 정서적 경험은 엄마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아기는 엄마품에서 젖을 빨면서 엄마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이 때 어린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 경험은 엄마와 동일한 것이다. 태아는 엄마의 뱃 속에서부터 엄마의 정서적 경험을 공유한다. 같은 몸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정서적 경험은 아기가 태어나 엄마와 몸이 분리되어도 일정 기간 계속된다.

이기의 발달이 어느 정도 진행 되면, 아기는 엄마와 동일한 정서적 경험을 하지만 몸은 서로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동일한 정서적 내용을 엄마와 아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즉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느낌을 갖는다는 것을 알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때부터 엄마와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자아인식이 아기에게 생기기 시작한다. 동시에 나와 다른 존재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서로 분리된 존재가 동일한 정서적 경험을 하는 것이 상호이해와 의사소통의 기원이다.

인간은 절대 논리적으로 의사소통하지 않는다. 정서적으로 의사소통한다. 어른이 될수록 정서적 경험이 풍부해지지 않으면 타인과의 의사소통 능력이 상실된다. 상호주관성의 근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남들은 왜 나 같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은 바로 정서적 의사소통 능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음악회도 자주 가봐야 하고, 미술관도 찾아가야 한다. 아니면 지독한 외로움의 타지 생활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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