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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거문고 줄 꽂아 놓고, 이승수, 돌베개, 2006 본문

책/밑줄긋기

거문고 줄 꽂아 놓고, 이승수, 돌베개, 2006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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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사무치게 외로운 날이 있다. 가족도 날 달래주지 못하고, 책 읽거나 영화 보기조차 귀찮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날이면 나는 친구를 생각한다. 술이나 한잔하자고 할까? 그러나 이내 그만두고 만다. 가슴 한쪽이 텅빈 듯한 공허감을 그냥 두기로 한다, 비어 있는 채로. 얼마간 비어 있는 채로 두면 된다. 중요한 것은 그 빈 공간을 간직하고 견디는 일이다. 삶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좋은 친구는 그 빈 공간을 채워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 공간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끝까지 지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들(옛 인물로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만나본 뒤 이런 결론을 얻었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독과 친해지는 일,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홀로 판단하고 서고 책임지는 능력, 그 리고 그 바탕 위에서 관대하고 따스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지니는 일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다면 자연 이질적인 존재들 사이에 신뢰가 쌓일 것이다. 친구와 우정의 이름으로 치장된 패거리 문화가 판치는 세상이 아니라, 관용과 신의가 편만한 세상이 아름답다. -25

 

호걸이란 세계와 맞대면하면서 유유히 넓은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인물을 일컫는다. 조선시대부터 오늘날까지 한정하면, 우리 역사에 志士는 많았다. 절의의 이름으로 죽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았던가! 才士도 많았다. 문화 예술의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禮士는 더 많았다. 행동 하나 말 한 마디마다 전례와 규범을 따지며 몸가짐을 단속했던 사람들은 부지기수이다. 하지만 단 하나, 뜻과 기상이 세상을 덮고 천지간에 獨立特行했던 豪士를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시선을 천년부동의 태산교악에 두고 가슴은 천년부절의 장강대하와 호흡하는 그런 호걸로 우리는 누구를 꼽을 것인가? -43

 

단절감에 휩싸여 있다면 겨울 숲으로 갈 일이다. 가장 가까운 소통의 회로가 끊어졌을 때, 그래서 누구와도 눈빛을 나누기가 귀찮고 말을 섞기가 어색할 때, 겨울 숲에 가서 묵인수행 중인 나무들 사이를 걸어 보라. 아무도 그대를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그 중 한 그루에 기대고 말을 걸어보아도 눈길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두어 시간쯤 거닐다보면 그 무관심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을 것이다. 모든 대화와 교감과 관심은 사치이고 허영이며 위선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천지간을 홀로 가듯, 그 나무들도 천지간에 홀로 서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해하고 신뢰하게 되면 말은 필요치 않으며, 그 순간 단절은 고독이 아니라 자유가 된다. 그런 뒤에 숲에서 나오면 다시 얼마간 살아갈 힘을 얻으리라. -64

 

일찍이 노자는 모든 존재는 부재에서 나온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삶을 아름다움은 죽음에서 나오고, 봄의 생명은 겨울에서 나온다. 빛은 어둠에서 나오고, 희망은 절망에서 나오고, 그리움은 이별에서 나오고, 지식은 무지에서 나오며, 새로운 길은 끊어진 옛 길에서 나온다. 저물녘 석양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는 숲 속의 호수를 보고 니체는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용

목차

몸을 맡겨 흐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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