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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사랑하지 말자, 김용옥, 통나무, 2012 본문

책/밑줄긋기

사랑하지 말자, 김용옥, 통나무, 2012

건방진방랑자 2019. 6.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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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도약이다. 청춘은 위협을 무릅쓴다. 청춘은 無知의 향유Enjoyment of Ignorance이다. 청춘은 에로의 投己이다. 청춘은 단절된 현재의 순간을 사랑한다. 청춘은 비상이다. 청춘은 모험이다. -18

 

누가 청춘을 아름답다 말했던가? 청춘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노인들의 청춘에 대한 회상만이 아름다운 것이다. 청춘에 대한 추억이 아름다운 것이다. 추억은 항상 아름다운 로맨스만을 추상해내는 능력이 있다. 거기에 부수된 불안과 공포와 고통은 떨쳐낸다. 청춘의 압도적인 사실은 좌절이다. 절망에는 내일이 없으며, 남아있는 재난의 기억조차 없다. -20

 

꿈이란 나에게 있던 것을 넘어서서 현재는 없으나 있을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있던 것과 있을 수 있는 것의 확연한 질적 콘트라스트가 없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다. 아파트ㆍ자동차 키나 장만하려는 꿈은 현재의 삶의 개선이며 그것은 현재의 물리적 조건의 연장일 뿐, 꿈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꿈에는 항상 신화적 요소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리비도 때문에 꼴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신화를 창조myth-making하려는 충동 때문에 꼴리는 것이다. -36

 

문명사회의 활력을 유지시키는 것은 고도의 이상적 목표가 추구할 가치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상식적 감각이 널리 퍼져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활기 있는 사회는 어떤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는 비장한 목표를 내장하고 있는 사회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개인적 만족personal gratification의 안일한 충족을 넘어서서 방황한다. 방황이 없으면 청춘이 아니다. 방황이 없으면 늙음의 고착만 있게 된다. 강렬한 흥미는 개인성을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의 측면에서 유발되는 것이다. -36~37

 

모든 옛날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이며, 현재적 실존의 관심을 떠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철학의 관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다. All history is contemporary.” -58~59

 

생물학적 진화Evolution도 진보Progress는 아니다. 진화는 진화일 뿐이다. 계통을 밟아 생명의 양식이 변화한 것일 뿐이다. 모든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할 수 있어도 진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발전Development”이란 발하여 펼쳐진다는 중립적인 의미일 뿐이다. 역사는 그냥 흐를 뿐이며 진보하지 않는다. -63

 

인생의 청춘의 꿈으로 시작하여 비극의 해탈로 끝난다. 꿈과 해탈을 연결하는 외나무다리는 모험이다. 인생의 오직 모험이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도전이 없이 젊음은 유지되지 않는다. -144

 

기호논리학이 풀어낸 인간의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인도유러피안 언어의 구조 내에서 파생된 문제의식들의 명료화과정clarifiaction process은 될 수 있을지언정 철학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중이 趙州 從諗(778~897?)에게 물었다: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왔다는 뜻은 무엇이오니이까?如何是祖師西來意?” 이에 조주는 대답했다: “뜰 앞의 잣나무!庭前柏樹子이들의 언어에 대하여 무슨 형식논리학의 계산을 할 것인가? 과연 그러한 논리학이 이들의 문제의식의 오류를 지적할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 서양철학은 언어가 표방하는 물리적 세계의 저차원에 머물렀다. 그것은 실상 철학의 영역이 아니라 물리학의 영역이다. 물리학이 더 잘 해먹을 수 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224~225

 

여섯 자리가 다 正位를 얻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소인의 길이다. 의 세계에서 완성은 좋은 의미가 아니다. 따라서 未濟라는 미완성의 시작이야말로 64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매우 상징적이다. -242

 

생명의 기본조건은 membrane에 있다. 막이라는 것은 주변환경과의 차등을 의미한다. 차등이 없으면, 그것은 죽음이요 무기물의 세계가 된다. 64괘라는 제한된 숫자로 되어 있는 것은 막의 상징성에도 비유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으로서 물과 불이 제시된 것도 생명의 기본적 특성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이다. 물 속에 불이 있고, 불 속에 물이 있을 때만 생명의 끊임없는 동화ㆍ이화의 대사를 계속한다. -243

 

신이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등등의 이야기는 특정한 언어게임의 맥락에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250

 

 

신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하느님을 자기로부터 대상화한 것은 인간이 언어를 획득한 후 대상세계로부터 무한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원시인에게 대자연은 공포였다. 닭도 순간의 위협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닭의 공포는 순간에 불과하다.

(……) 자연상타에서 거의 무방비상태로 의존적인 인간이라는 동물은 언어를 획득하면서 더욱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게 되었고, 이러한 공포는 언어의 습득과정을 통하여 더욱 확대된 보편적 가치로서 유전되게 된다. 이러한 보편적 공포의 느낌을 언어로서 집약하면 그것은 명사화되며, 인격화되며, 권력화 된다. 인간은 자식의 공포를 경감시키기 위하여, 그리고 무엇보다도 효율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먹이의 습득을 위하여 사냥이라는 협업을 개발했고, 이러한 단체 협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사회집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집단의 확대는 정치적 리더십을 불가피하게 요구하게 되었고, 그 리더십이 그 집단멤버의 결속과 복종을 요구하기 위하여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손쉽게 보편적인 방법은 공포의 대상으로서 명사화된 존재를 절대화시키고 우상화시키고 인간은 판단을 뛰어넘는 초월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모든 종교는 공포나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고, 그것은 인간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인간을 소외시키는 절대권력이 된 것이다. 이것이 대체로 祭政一致라고 부르는 고대사의 보편현상이다. -252

 

 

동학과 서학의 차이

 

서학의 역사의 성격은 동학의 역사와 비교해보아도 너무도 명백히 드러난다. 동학은 모든 초월성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 그 자체를 재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민중의 삶을 재건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결국 조직적인 사회개혁의 요구로 나타났다. 기독교도들이 천당을 추구할 때 동학교도들은 이 땅의 혁명을 주도했다. -263

 

 

8.15에 대한 냉정한 평가

 

8.15해방은 독립이 아니었다. 獨立이란 홀로 서는 것이다. 자력에 의하여 자립하는 것이다. 해방은 외세에 의하여 갑자기 일제의 압제로부터 풀려난 사건일 뿐이다. 그래서 주체세력이 없는 해방이었다. 독립의 주체가 없었기 때문에 해방 후 정국이 결국 분단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역사의 귀결이었다. 북한은 연안파나 남로당과 같은 주체세력이 득세하지 못하고 소련세력을 업은 김일성이 장악하게 되고, 남한은 건준이나 임정과 같은 정통성 있는 세력이 득세하지 못하고 미국세력을 업은 이승만이 장악하게 된다. -267

 

기독교의 최대 주제도 인간의 죄악의 근원인 욕을 어떻게 예수의 십자가에 못박느냐 하는 것이다. 육욕의 삯은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다. 부활사건이란 곧 육체의 욕망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이렇게 보면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과제는 천당이라든가 영혼불멸이라든가 열반이라든가 해탈이라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었고, 살아있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욕망을 제어하고 사느냐 하는 실존적 과제상황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모든 성인은 결국 욕망을 보편적 선의 구현을 위하여 제어하는 살아있는 인간일 뿐이다. -277~278

 

종교는 공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생리적 허약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언어가 생겨나고 자신이 방어적 위치가 아닌 공격적 위치에 서게 되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알지 못하는 자연현상, 신비로운 현상, 질병, 죽음, 패배가 모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이 공포는 인격화되면서 하느님이라는 인격체, 즉 명사화된 공포의 주체가 되었고, 이 공포의 주체는 동시에 잔인의 주체가 된다. 인간세의 모든 잔인함의 원인이 바로 이 공포의 주체이다. 그러기 때문에 종교는 잔인할 수밖에 없었다. -279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

 

우리가 북한산을 바라볼 때도 어떤 사람은 북한산을 휘덮은 나무의 초록 잎새들만 바라보고, 어떤 사람은 잎새와 잎새 사이를 흐르는 기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 기의 流行 내면의 그윽한 리를 보고, 어떤 사람은 그 흙 내면의 지층을 투시하고, 어떤 사람은 산의 앞면을 투과하여 그 후면을 계측하기도 한다. 셀 바이올로지스트들은 잎을 구성하는 세포들의 구조와 기능을 파악하겠지만 또 에콜로지스트들은 그 산이라는 유기체의 거대순환을 관망할 것이다. -283

 

 

도올의 천지종교란?

 

천지 그 자체를 하느님으로서 인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철학이 말하는 현상으로서의 천지가 아니라 무한한 자체초월의 가능성을 지니는 통합의 장으로서의 천지를 말하는 것이다. 천지의 특징이 생명의 창조적 순환이며, 순환은 반복이 아닌 영원한 약동이다. 生生之謂易의 생명의 약동에 대하여 끊임없이 외경심을 갖는 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천지종교인 것이다. 인간이 자기몸생명과 그 생명의 본원으로서의 천지온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갖지 못한다면 그는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284

 

 

사랑하지 말자는 이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을수록 좋고,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을수록 좋다. 이 세상의 모든 부부들이여! 사랑하지 말라! 그대들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평온하리라!

(……) “사랑에 해당되는 우리말은 앞서 말했듯이 괸다든가, “아낀다하는 정도의 말들이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생각해주고 배려해주고 아껴주면 그만이다. 사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95~296

 

 

건강검진이 문제다

 

현재 의료는 기업이다. 이렇게 기업화된 의료에 자신의 건강을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우매한 짓이다. 건강검진을 안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종합검진에서 체크되는 나의 몸에 관한 정보는 나의 생명상태에 관한 확고하고도 절대적인 정보체계라는 생각을 해서는 아니된다. 오진도 많고 내가 꼭 숙지해야만 할 필요가 없는 정보도 너무 많다. 생명의 존엄성을 하찮은 계량수치에 예속시킬 필요가 없다. 종합검진이라는 것 자체가 예방이라는 허울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백화점의 바겐세일 비슷한 것이다. 종합검진을 통해 환자를 양산해내는 것이다. 의료제국은 의료소비를 촉진시키는 방식으로 의료조직과 국가권력이 서로 얽혀져 있는 것이다. 환자가 양산되어야만 대병원의 수익구조가 돌아가게 되어 있다. -298

 

 

몸의 소리를 들어야 의료 권력에 빠지지 않는다

 

정치는 개판으로 하면서, 다시 말해서 온갖 스트레스와 사회적 질병을 정치가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국민건강을 증진시킨다는 구실로 계속 환장을 양산해내는 싸이클 속에 국민을 예속시킨다. 의료보험공단은 국민에게 종합검진의 의무를 강요하면 안된다. 그것은 의무가 아닌 국민의 권리일 뿐이다. 검진을 받기 싫은 사람에게는 받지 않을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매스컴을 통한 일체의 의료정보에 우리는 눈을 닫고 귀를 막아야 한다. 건강에 관한 상식을 들을수록 인간은 불건강해진다. 의사는 응급시에 필요한 존재일 뿐이다. 의사는 나의 건강을 증진시키지 못한다. 그들은 파괴를 회복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정상인의 건강을 증진시키지는 못한다. 나이 건강의 기준은 오직 나의 몸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몸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298~299

 

 

성은 누리는 게 아닌 절제하는 것

 

가장 건강한 방법은 성으로부터의 절제를 배워서, 다시 말해서 하초로부터 정을 축적하여 상초에까지 올라차게 만듦으로써 위기를 강화시키고 영기를 건강케 만드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들이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몸으로 빈약한 식사에도 건강하게 견디는 것은 기나긴 금욕을 통하여 우르드흐바 레타스를 달성하였기 때문이다. 부부지간에도 혈기가 왕성한 젊은 날에는 서로가 정을 방출함으로써 건강할 수도 있지만, 자식이 어느 정도 크고 자신들의 삶이 안정되면, 성교를 삼가고 보다 건강한 성스러운 삶의 주제들을 찾아 나가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삶의 태도라 말할 수 있다.

(……) 부부는 사랑할 필요가 없다. 부부의 테마가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서로가 훨씬 더 위대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 다석 유영모 선생은 52세 되던 해에 一日一食과 더불어 부부금욕을 의미하는 해혼을 선언하고 평생 김효정 여사와 다정한 친구처럼 해로한 이야기도 잘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런 것은 선언까지도 할 필요가 없는 동방인의 상식이다. -300~301

 

 

놓아줄 땐 놓아주는 지혜

 

내가 키우던 봉혜는 주변의 고양이들을 선제공격하여 모두 제압했다. 고양이들이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맹금의 맹렬함을 과시했다. 그 병아리에 대한 헌신적 삶을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지속된다. 그러나 이렇게 지독한 보호의 기간도 길어봐야 50일을 넘기지 않는다. 어떤 때는 25일까지 단축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의 몸의 정상생리가 회복되고 다시 배란이 시작되면 자신의 삶을 되찾고, 새끼들은 위한 자신의 헌신을 과감하게 종료한다. 그 종료방식이 너무도 눈물겨웁게 처절하다. 새끼들은 50일 동안 그토록 자기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주었던 엄마 품을 그리워하며 계속 다가오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정없이 새끼들이 근접 못하도록 쪼아버린다. 쪼는 방식이 매우 충격적으로 냉엄하다. 새끼들은 무의식적으로 이틀 가량 엄마 품으로 계속 다가가지만 무자비하게 쪼임을 당한다. 그리고는 결국 독립된 개체로서 자신을 의식하게 된다. 엄마가 갑자기 남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봉혜는 그 뒤로는 바로 자신의 잠자리 횃대인 정원의 높은 나무로 후루룩 날아가 버렸다. 어미 닭이 병아리를 이렇게 사정없이 쪼아버리는 시기는 이미 병아리들이 하나의 성숙한 개체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조건이 갖추어진 때이다. -304~305

 

요즈음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너만 잘되면 된다하여 효심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서방교육의 폐해이다. 효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인간의 가장 가깝고, 가장 비근하고, 가장 원초적인 자기 심성의 바탕으로부터 도덕적인 마음, 즉 측은지심의 인의 섬세한 감각을 가르침으로써, 그 느낌을 확충해나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좁은 의미에서의 가족주의나 네포티즘nepotism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보편윤리의 실제적 느낌의 근거를 말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사랑은 너무 허구적이다. 엄마에 대한 사랑은 너무도 리얼한 것이다. 308~309

 

2차세계대전 이후에 약속 민족국가들이 외면적으로 독립국의 형태를 취하게 되자, 독립국의 형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그 경제를 강대국에서 예속시킴으로써 지배체제를 관철시키는 새로운 식민방식이 생겨났으니 이것은 신식민지주의라고 한다. 요즈음 떠드는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식민지주의 보편화하기 위한 이론적 전략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신식민지주의의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민족동포의 안녕과 복지와 행복이 존재이유가 아니다. 어떻게 동포인민을 활용하여 세계 다국적기업들의 연계망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을 모색하는가 하는 것만을 생각하는 독자적 시스템들이다. 신자유주의가 표방하는 개방, 경쟁, 효율성의 제고, 공적영역의 촉소, 사유화 등등의 모든 전략이 미국의 세계지배와 우리나라 대기업의 이익에 충실하게 복무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식민지주의의 주구 시스템들이 취하는 국내전략은 농촌을 포함한 국민들의 생활세계를 철저히 파괴시키는 것이다. -324~325

 

는 땅을 대표하는 것이고, 는 하늘을 대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음식을 섭취했을 때 화가 위로 뜨고, 수가 아래로 가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항상 머리는 내설악의 백담처럼 맑아야 하고 하체는 사하라사막처럼 더워야 한다. 그래야 몸이 하게 된다. 대체로 몸의 불을 아래로 갈무리하는 것이 이다. 따라서 젊은 날에 정액을 많이 쏟아낸 자들은 불이 위로 뜬다. 플레이를 많이 쳐도 반드시 관절염이 걸리거나 얼굴에 종기가 많이 돋는다. 이것을 虛火가 뜬다라고 하여튼 몸의 현상에서 上火는 나쁜 것이다. -338

 

 

낙농음식을 멀리하라

 

낙농음식은 다 나쁜 것이다. 우유니 치즈니, 버터니 하는 낙동식물을 바탕으로 한 음식은 기본적으로 저열한 것이다. 산천초목이 척박한 지역에서 불가피하게 발달한 음식이며 그것은 쌀과 채소처럼 곧바로 자연의 특혜를 활용한 제1차적 독립영양생물이 아닌, 여러 종속 단계를 거친 음식이다.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독소가 쌓인 음식이며 고단백이긴 하지만 인간의 몸에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니까 방과 낙농을 중심으로 한 서양음식은 그 기본이 저열한 것이다. -340

 

 

자기 전에 비워라

 

잠잘 동안에 완벽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인간 유기체의 건강에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잠을 위한 가장 직접적으로 현명한 방법은 증초에 땔깜을 주지 않는 것이다. 장작을 잔뜩 넣어놓은 난로는 밤새 훨훨 타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돌보지 않는 난로는 장작이 불완전연소를 할 때가 많다. 연기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장작을 아예 넣지 않은 난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것이다.

(……) 번열이 발생하여 몸이 더워지고, 虛火가 위로 뜨며, 그 불길은 중추신경계를 전체적으로 자극한다. 그래서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활동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대사는 불완전하게 이루어져 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더러운 대기가 몸의 하늘을 휘덮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얼굴이 탁해지고 여드름이 많이 발생하며 목덜미나 여타 상초 부위에 종기가 많이 솟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골치가 띠~잉하다. 그리고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방귀가 많이 나오고, 똥을 눠도 악취가 심하다. 악취가 없는 중용의 황금똥이 나오질 않는다. -347~348

 

 

저녁 식사 없는 삶

 

빈속으로 자는 잠이야말로 수승화강을 실현하는 첩경이다. 잠자는 동안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게 된다. 아침에 머리에 내설악의 백담 같은 옥색 물결이 넘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유행하고 있는데 그 의미맥락의 본의는 가족공동체적 삶의 회복에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 없는 삶이야말로 생리적으로 가장 위대한 삶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저녁을 먹지 말것!”이 말은 매우 가혹하고 비상식적으로 들리지만, 이 말 한마디의 정당성과 그 생활양식을 이해하게 되면 만병이 사라진다. 위통으로 고생하는 자, 소화불량이 있는 자, 꿈을 많이 꾸는 자, 골치아픈 자, 아침에 얼굴이 붓는 자, 아토피가 있는 자(아토피 환자는 우선 육식을 금해야 한다), 얼굴 피부가 나쁜 자, 종기가 많이 나는 자, 변비로 고생하는 자, 혈압이 높은 자…… 온갖 병변이 저녁을 먹지 않는다는 이 비결 하나로 否卦에서 泰卦로 갈 수 있다. -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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