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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에서 배운 비고츠키를 지워라 - 3. 비고츠키와 포정이 알려준 것 본문

연재/배움과 삶

교육학에서 배운 비고츠키를 지워라 - 3. 비고츠키와 포정이 알려준 것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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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고츠키와 포정이 알려준 것

 

 

관성대로 살 때 우리의 삶은 편하다. 더 이상 머리 아프게 공부할 필요도, 내가 발 딛고선 현실을 부정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불편함에 익숙해진 결과이고 왜곡을 합리화한 결과에 불과할 뿐이다. 학교에서 정한 성적 따위로 사람을 판단하고, 기업이 정한 기준으로 나만의 가치를 죽이고 스펙으로 가득 찬 기계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이 과연 편하고 좋기만 한 것일까. 그렇기에 박동섭 교수님은 어떤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고 말했던 것이리라.

 

 

 

안다는 것, 그건 끊임없는 투쟁의 길이다

 

현실의 부조리를 아는 순간, 어떻게 살지 막막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의 혼란은 짜릿한 황홀감이었다.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지한 채 디자인된 현실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을지, 그게 고민이다. 밑에 인용해 놓은 장자의 이야기는 바로 이와 같은 긴장감을 잘 보여준다.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고 있었다. 손이 닿는 곳과 어깨가 의지하는 곳, 발이 딛고 선 곳, 무릎이 굽히는 곳에서 뼈 바르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칼을 놀려 획하는 소리가 나니 가락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동작은 탕왕의 무악인 상림의 춤인 듯했고 마침내 경수의 가락에 들어맞기까지 했다.

庖丁爲文惠君解牛. 手之所觸, 肩之所倚, 足之所履, 膝之所踦, 砉然嚮然, 奏刀騞然, 莫不中音. 合於桑林之舞, 乃中經首之會.

 

문혜군이 말했다. “, 좋구나! 기술이 어찌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는가?”

文惠君曰: “, 善哉! 技蓋至此乎?”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이며, 이는 잔기술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처음 제가 소를 잡았을 적엔 보이는 게 온통 소가 아닌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더 이상 소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마음으로 벨 뿐 눈으론 보지 않고 감각으로 그것을 안 채 마음에 따라 행동합니다. 하늘의 이치에 따라 뼈와 살이 만난 부분을 쳐서 큰 틈을 가르는 것은 본래의 속성을 따릅니다. 그러니 기술로 힘줄과 뼈가 붙은 곳을 지날 적에 조금도 머뭇거린 적이 없었는데, 큰 뼈다귀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庖丁釋刀對曰: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无非全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官知之而神欲行. 依乎天理, 批大卻, 導大窾因其固然. 技經肯綮之未嘗微礙, 而況大軱乎!

 

솜씨 좋은 백정은 해마다 칼을 바꾸는데 살을 베기 때문이고,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에 닿기 때문이지만, 이제 저의 칼은 19년이나 된 것으로 수천마리의 소를 잡았음에도 칼날은 숫돌에서 막 나온 듯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지만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으로 틈이 있는 곳에 밀어 넣으면, 공간이 널찍하여 칼날을 놀려도 반드시 남는 공간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19년을 사용했음에도 칼날은 숫돌에서 막 나온 듯한 것입니다.

良庖歲更刀, 割也; 族庖月更刀, 折也; 今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 是以十九年而刀刃若新發於硎.

 

비록 그렇다 해도 매번 힘줄과 뼈가 엉킨 곳에 이르면 저는 하기 어려운 것을 보고서 두려운 듯 긴장하며 눈으로 세심히 보고 칼의 움직임은 섬세하게 합니다. 칼의 움직임을 매우 섬세하게 하다가 어느 순간에 재빨리 베어버려 이미 뼈와 살이 분리되니 마치 흙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이 후두둑 분리되어 버립니다.

雖然, 每至於族, 吾見其難爲, 怵然爲戒, 視爲止, 行爲遲. 動刀甚微, 謋然已解, 如士委地.

 

그제야 칼을 든 채 서서 사방을 둘러보며, 머뭇거리다가 이내 흐뭇해져 칼을 닦아 넣어둡니다.”

提刀而立, 爲之四顧, 爲之躊躇滿志, 善刀而藏之.”

 

문혜군이 말했다. “훌륭하구나. 나는 그대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을 터득했다.”

文惠君曰: “善哉! 吾聞庖丁之言, 得養生焉.” -莊子』 「養生主

 

 

비고츠키는 백정이다. 이게 웬 막말인가 할 테지만, 내가 볼 땐 두 사람이 지닌 삶의 긴밀도는 같기 때문에 이런 막말을 한 것이다.

위에서 인용한 구절의 핵심은 백정, 소와 통하였느냐?’쯤 될 것 같다. 백정이 소에게서 살을 베어낼 때 뼈와 살의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칼을 들인다. 그러니 칼은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뼈와 살이 자연스럽게 분리되더라는 것이다. 백정은 전문가다. 하지만 처음부터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엔 잔뜩 긴장하여 소의 겉모습에 기가 질기도 했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나자 감각기관 너머의 본질을 볼 수 있게 되었단다.

그쯤에서 글이 끝났다면 이글은 평범한 글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능숙하다 할지라도, 뼈와 살이 엉켜있는 곳(나의 능숙함으로도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르면 모든 자의식을 걷어내고 더욱더 긴장을 해야만 한다고 말을 이어가기 때문에 이 글은 명문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알게 된 것만으로는 절대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건 매순간 긴장 속에서 살아야 하는 출발점일 뿐이다. 그럴 때 우린 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고 디자인된 세상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에야 새롭게 환경을 디자인할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것이다.

 

 

관성의 늪에 빠지지 않고 디자인된 세상의 그물망에 걸려들지 않으려면 백정이 되는 수밖에 없다.

 

 

 

돗대가 아닌 연대로

 

돗대(담배의 돗대를 말함*^^*)는 외롭다. 아무리 깨어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배척당하게 마련이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눈이 보이는 주인공은 눈먼 자들의 왕이 되긴커녕 배척당했던 것처럼 말이다. 박동섭 교수님이 게재불가된 논문에 울분을 삭히지 못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지 않을까.

그렇기에 우린 돗대로 머물러선 안 된다. 디자인된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았다면, 좀 더 나은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모여 힘을 보태야 한다. 돗대로 남기보단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비고츠키 강의에 모였던 당신들이 소중했고 오래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6강의 시간을 함께 하며 비고츠키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에게 아래의 노래를 바치며 문화적 실천을 함께 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언제든지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

생각해주세요. 그 멋있는 이름을

마음이 울적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에

꼭 꼭 누군가가 언제나 곁에 있어

태어난 마을을 멀리 떠나 있어도

잊지 말아주세요. 그 마을의 바람을

언제든지 곁에 있어

비 오는 아침엔 도대체 어떻게 해

꿈에서 깨어나도 역시 외톨이야

언제든지 네가 꼭 옆에 있어

생각해주세요. 멋있는 그 이름을

싸움에서 상처 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봐요. 노래가 들려와요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사라져가

그래 꼭 너의 웃는 얼굴을 원해

바람 부는 밤엔 누군가를 만나고파, 꿈속에서 봤지. 너를 만나고파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엔딩송 いつでもかが

 

 

사족: 631분이 되어서야 후기를 올렸다. 이 뿌듯함을 어디에 비할 수 있을까? 난 글이란 내가 주체적으로 쓰는 것이라 믿지 않는다. 어떤 흐름이 나를 타고 흘러들어와 글로 표현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애쓴다고 써지는 것도, 흘러 다닌다고 안 써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레 흘러 자연스레 새겨지는 것 그게 글이라 할 수 있는 거다. 어찌 되었든 오랜 시간 6강의 특강이 나를 타고 흐를 수 있었다는 것에, 그런 시간을 감내한 끝에 이 글이 완성되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인용

목차

교육학에서의 비고츠키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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