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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에서 배운 비고츠키를 지워라 - 1.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으로 비고츠키 그리기 본문

연재/배움과 삶

교육학에서 배운 비고츠키를 지워라 - 1.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으로 비고츠키 그리기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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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으로 비고츠키 그리기

 

 

준규쌤의 건의에 의해 강의를 듣게 되었다. 6강으로 구성된 강의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더욱이 배우려는 자세가 있긴 했던 걸까?

 

 

6강으로 구성된 이 강의는 교육학 시간에 배웠던 비고츠키를 완전히 깨부수었다.

 

 

 

산만한 정신을 부여잡고 후기를 쓰다

 

6강의 강의가 끝나는 순간 든 생각은 이제야 끝났다는 안도감이었다. 내용이 그렇게 어렵다거나, 힘이 부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마음이 딴 데에 가있었다. 요즘 방향도 잡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으로 살다보니, 정신도 산만해져 있다.

이런 상태이기에 6강 동안 치열하게 알고자 했지만 헛수고였다. 준규쌤의 관점이 있어야 상이 맺힌다라는 말처럼 무언가 나만의 관점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러질 못하니 맺히는 것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 특기인 몰라도 무조건 열심히 듣고 보자라는 건 이때도 유용하더라. 그래서 알쏭달쏭함에도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열심히 들었는데, 내 귀는 어찌나 뻥뻥 잘 뚫려있던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말았다. 흘리는 과정 속에 뇌를 거쳤기에 뇌에 잔상이 남아 있을 만도 한데,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건 강의를 듣는 순간에 끼적거려 놓은 글일 텐데, 지금 들여다보면 도무지 무슨 말을 듣고 이런 글을 써놨나 싶기만 하다. ~ 참새보다 약간 좋은 나의 기억력이 한스럽다ㅠㅠ

 

 

주말에 쉬고 싶을 텐데,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자리를 채운 사람들.

 

 

 

기억은 추억을 배반한다

 

그런데 이런 넋두리도 사실 부질없는 짓이다. 언제나 기억은 추억을 배반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기억했다 한들, 그러한 기억은 왜곡된 사실일 수밖에 없다. 강의를 듣는 순간, 나에게 의미 있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하여 기억한다. 그걸 글로 적거나 남에게 이야기할 땐, 모두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재차 취사선택하게 마련이다. 두 번의(또는 그 이상의) 취사선택 과정을 거치며 표현하다보면 어느새 강의 내용과 표현하는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메멘토란 영화는 이러한 기억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기에 객관적인비고츠키 강의 후기를 쓰려는 욕심은 버리련다. 그저 느낌 그대로, feel을 살려서 나에게 비고츠키는 어떻게 다가왔는지 써볼 것이다.

 

 

기억과 기록이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믿을 때, 불행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영화다.

 

 

 

人間 그리고 삶

 

사람이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사람과의 관계, 도구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한자로 표현하면 人間이라 한다. 사람은 무엇과 무엇의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사람은 그런 것들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사람을 나타내는 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이의 존재라는 뜻의 이야말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지식이 나의 독창적인 것일 수 없으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도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만날 놀기만 하니 공부를 못하는 거야”, “집 안에만 틀어 박혀 게임만 하고 있으니, 친구가 없지라고 모든 문제를 개인의 잘못인 양 몰아붙이니 말이나 되는가.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렇게 저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린 몇 밤

저 안에 땡볕 한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나무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 장석주

 

 

대추가 동그란 모양새가 되고 붉어지기까지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했다. 어떤 것이 형성되기까지는 선천적인 것과 맞물려 후천적인 상호작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선천과 후천을 나누고, 대추와 환경을 나누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건 무의한 일이 될 뿐이다.

어디 대추만 환경과 통하였겠는가. 어찌 보면 사람이야말로 더 크게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장석주의 통찰은 어찌 보면 어떤 관계성에 대한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인용

목차

교육학에서의 비고츠키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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