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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공자의 유랑도 본문

고전/논어

논어 - 공자의 유랑도

건방진방랑자 2019. 1. 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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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유랑도

(孔子 流浪圖)

 

 

▲ 춘추시대(BC 770~403)

 

 

기원전 505, 양호(陽虎)가 세력을 잡자 제()로 망명함. (48)

 

기원전 502, 양호(陽虎)가 실각해서 제()로 망명하고 공자(孔子)는 노()로 귀국함. (51)

협곡(夾谷)의 만남을 통해 제()와 노()가 우호 맺음, 양호(陽虎)는 제()()()으로 망명함.

삼환(三桓)을 약화시키려는 공자(孔子)의 계책은 실패함.

 

기원전 498, 공자(孔子)는 위()로 망명함. 강대국인 진()으로 가려 했으나 양호(陽虎)가 그 곳에 있어 단념함. (55)

영공(靈公)이 공자(孔子)에게 호의적이었으므로 그 곳에서 6년간 체류함.

 

영공(靈公)이 죽은 후 후계 계승 문제가 발생하자 양호(陽虎)의 개입으로 인해 공자(孔子)는 진()으로 떠남.

 

()에서 5일 동안 포위됨.

 

()에서 유력자인 환퇴(桓魋)가 난()을 일으켜 생명의 위협을 받음.

()에서 3년 동안 체류하고, 그 사이 제자인 염구(冉求)가 노()의 재상이 됨.

 

자유를 찾아 초()로 가는 도중에 전란에 휘말림. ‘진채(陳蔡)의 곤액(困厄)이란 말을 씀.

 

()의 섭군(葉君)과 대립해서 다시 진()으로 돌아감.

염구(冉求)의 노력으로 노()로부터 귀국 요청을 받음.

 

⑨⑩ 기원전 484, ()를 거쳐 14년 만에 노()로 귀국함. (67)

공자(孔子)는 양호(陽虎)와 함께 유학의 소양을 가지고 당시 정치 개혁을 목표로 삼았는데, 양호(陽虎)가 현실주의적인데 반해, 공자(孔子)는 이상주의를 관철했기 때문에 서로가 격렬하게 대립했음.

 

 

인용

목차

생애

유랑도

제자들

논어한글역주

춘추시대의 걸출한 인물,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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