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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예수와 헬레니즘 본문

고전/논어

논어한글역주, 통서 인류문명전관 - 예수와 헬레니즘

건방진방랑자 2021. 5. 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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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와 헬레니즘

 

 

예수는 갈릴리사람이었고, 그의 사역의 대부분은 갈릴리지역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천국을 선포했던 것이다. 갈릴리라는 말의 어원 자체가 이방인의 지역(Gelil)’(9:1)에서 왔듯이, 갈릴리는 전통적으로 남부의 유대지역과의 연속성보다는 북부의 페니키아문명이나 시리아지역과의 연속성이 더 강한 곳이며, 신약의 시대에도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정치적ㆍ민족적 단위(an autonomous and self-contained politico-ethnic unit)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는 매우 풍요로운 농작과 어업이 가능했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부유했고 인구의 밀도가 높았다. 따라서 동방으로 가는 대상루트의 배경지역으로서 헬레니즘문명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예수의 일생에 관해 일차적인 전기적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온 마가복음이 갈릴리바다 북단의 자그마한 어촌인 가버나움(Capernaum)지역을 사역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있고, 그 주변의 실제적 도시문명의 정황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매우 목가적인 향촌인으로 인식하기 쉬우나, 당시 갈릴리와 그 부근은 엄청난 헬레니즘의 대도시로 가득 차 있었다. 나자렛에서 불과 2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세포리스(Sepphoris)와 같은 대도시도 언급되지 않았으며, 가버나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헤롯 안티파스에 의하여 갈릴리호숫가에 세워진 티베리아스(Tiberias)와 같은 중요한 도시도 공관복음서에는 언급조차 되고 있질 않다. 예수는 갈릴리사람으로서 헬레니즘문명의 훈도를 충분히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헬레니즘이란 알렉산더대제(Alexander the Great, BC 356~323)에 의하여 건설된 제국문명 이후의 사태를 말하는 것으로, 아테네와 같은 작은 폴리스(polis, 도시국가)의 국부적 영역에 제한되지 않은, 지중해연안에서 인도에 걸친 거대한 코스모폴리스(cosmopolis)로 진화된 개방문명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는 아람어(Aramaic)라는 당시의 갈릴리지역의 국제통용어를 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아람어는 보통 페니키아 알파벳으로 표기되었다가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 그가 헬레니즘문명에 정통한 수준으로 볼 때 희랍어에 노출되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역사적 예수의 진상이 어떠한 것이든지 간에, 문헌적으로 실존의 신빙성이 확실하며, 역사적 예수를 부활의 케리그마(Kerygma)전달자로서 선포하다는 뜻으로 복음의 선포와 구두 문답로 변모시킴으로써 기독교 성립의 최초의 한 전기를 마련했다고 사료되는 사도 바울은 철저히 헬레니즘문명의 훈도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헬라말이야말로 사도 바울의 모국어였고, 그의 사유체계는 전적으로 헬라어의 개념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헬레니즘철학의 핵심적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를 헬레니즘의 견유학파(犬儒學派)의 한 카리스마적 현자(Cynic)로서 파악하는 최근의 학계동향이 두드러지고 있지만, 헬레니즘 문명권 내의 예수라는 견유(犬儒)를 부활과 재림의 메시아로서 둔갑시킨 사도바울의 정신세계도 유대교와의 연속성보다는 헬레니즘과의 연속성이 더 명료하게 드러나는 언어적 패러다임을 과시하고 있다.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였다. 여기 이방인(Gentiles)이란 헬레니즘문명권내의 헬라적 사유에 젖어있는 비유대계 사람들을 가리킨다. AD 70년경부터 AD 100년경 사이에 성립한 4복음서문학도 모두 코이네(koine) 희랍어로 기록된 것이다. 마태복음서가 유대교와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복음서문학은 모두 헬레니즘 문화에 젖어있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독교는 구약의 세계와의 관련성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 구약적 세계관, 즉 율법주의적 유대교와의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그레코ㆍ로만 세계에로의 대로를 개척하였던 것이다.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헬레니즘의 산물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젖어있는 사람들은 암암리 인류의 역사의 시원을 더듬어 올라갈 때 그레코ㆍ로만문명에서 멈추게 마련이다. 아예 구약적 뿌리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역사가 웰즈(H. G. Wells)가 지적하는 바, 최근까지만 해도 창세기라는 사건이 BC 4004년 봄이냐 가을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심각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A Short History of the World, 1). 기독교의 역사는 로마제국의 역사며 그 이후에 전개된 중세기와 르네상스, 그리고 서구라파 중심의 근대적 변용의 역사다. 그런데 로마제국은 헬레니즘문명의 틀 속에서 독자적인 성격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많은 사가들이 헬레니즘 그 자체의 연구를 심각하게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을 희랍제국에서 로마제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으로만 규정해 버린다. 동ㆍ서가 교류된 그 개방적 문명의 독특한 성격을 독자적으로 규명하는데 소홀하였던 것이다. 철학사에서도 스토아학파(Stoicism), 에피쿠로스학파(Epicurianism), 견유학파(Cynicism), 회의학파(Skepticism) 등의 헬레니즘 사상은 좀 천박한 인생철학인 것처럼 가볍게 간과하기가 일쑤다. 그들이 추구한 세계관과 가치관의 총제적 모습을 심도있게 천착하는 노력이 과거의 철학사 기술에는 별로 엿보이질 않았다.

 

물론 헬레니즘은 폴리스의 고전시대, 즉 헬레니스틱(Hellenistic)이라는 형용사와 대비되는 헬레닉(Hellenic)이라는 형용사로 수식되는 아테네중심의 희랍 시대를 모태로 삼는다. 결국 서양역사나 서양정신사의 프로토타입이 모두 소크라테스 이전철학(Pre-Socratics)에서 출발하여 소피스트를 거쳐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완성되는 희랍고전철학시대로 귀속되는 것이다.

 

 

 

 

건축사를 쓸 때에도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신전과 그 부속 건축물들을 서양의 모든 건축구조의 프로토타입인 것처럼 기술한다면, 그 도리아식 질서감의 완성미가 아무리 정치(精緻)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BC 5세기 중반의 작품일 뿐이다. 그것은 고대 민주주의의 황금시대를 연출한 탁월한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kles, BC 495~429)에 의하여 발원되었다. 그리고 조각가 피디아스(Phidias)의 지휘하에 이크티누스(Ictinus)와 칼리크라테스(Callicrates)의 설계로 BC 447년에 착공하여 BC 438년에 아테나 여신상이 안치되었고, 외장은 BC 432년에나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잠깐 우리의 눈을 돌려 이집트 카이로 남서쪽 교외에 있는 기자(Giza)의 장쾌한 대피라미드(the Great Pyramid)를 쳐다본다면, 그것이 자그만치 아테네의 파르테논보다 약 2150년을 앞선 작품이라는 사실을 우뚝 목격하게 된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인류문명의 시원을 그레코ㆍ로만문명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해야할 충분한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파르테논을 바라보는 시간의 격차만큼, 또 다시 희랍인들의 입장에서 시간의 격차를 느꼈을 태고성 그 자체에 우리의 경이감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으로부터 22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쿠푸왕(Khufu, BC. 2609~2584, Oxford Encyclopedia of Ancient Egypt에 준거)의 피라미드의 건설에 동원된 인력동원방식의 조직성과 토목ㆍ기계공학기술, 천문학, 수학, 예술, 그리고 그에 부속되는 명부신전(mortuary temple)과 장엄한 신도(causeway)와 거대한 명부 범선(레바논 백향목소재, 길이 43.5m) 저장실 등등의 정교함과 방대한 규모의 수준이 도무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에 우리의 진정한 경이감이 엄존하는 것이다. 아테네 파르테논과 같은 신전의 가능성이 이미 다 배태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문명수준의 격차의 느낌이 역사발전의 방향화살표를 전도시키고 있다는 충격을 안겨준다. 파르테논 정면의 너비는 30.89m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지상 한면의 길이는 230.35m이며 높이가 146.50m, 사각이 50° 5035이다. 내부의 현실(玄室)3개나 되며 평균 2.5톤이나 되는 돌이 230만개 정도 배열되어 있다. 나는 대피라미드 내부 중앙에 위치한 쿠푸왕 자신의 대석관이 놓여있는 현실(玄室)을 답사하면서 그 기하학적 구도의 정교함과 적석(積石)의 정밀함에 찬미의 탄성을 금할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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