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근대화
우리 민족은 18세기 말기부터 주자학 유일신앙의 권위주의 사상풍토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으나, 불행하게도 또 하나의 유일신앙적 권위주의를 도입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것이다. 조선왕조 남인계열의 유자들이 권력에서 소외되고, 또 조선왕조의 이데올로기로서 신봉하고 있는 성리학적 틀이 유학의 본래정신에서 벗어나 민중과 역사를 소외시키고 있다는 판단이 들 무렵, 그들이 구원과 구세의 빛으로서 접한 기독교라는 것은 양천년의 기독교 역사에서 본다면 온갖 개혁의 흐름에 대하여 반사적으로 교조화된 서구 가톨릭의 말류였다. 그러나 비록 제국주의적 이념의 틀 속에 갇혀있었던 기독교이긴 했지만, 그 기독교는 유교보다는 더 철저한 사민평등의 보편주의적 가치관을 가르쳤고, 근세 과학정신과 결부된 신교육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서구예술ㆍ문화ㆍ의복ㆍ건축ㆍ음식ㆍ예법 등등을 수용케 하는 새로운 일상 소양의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민족은 기독교의 핵심인 기독론(Christology)을 신봉하든, 신봉하지 않든 간에 부지불식간에 기독교라는 문화현상에 침윤(浸潤)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우리민족의 19세기는 조선왕조의 몰락이라는 비극적 문명해체과정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으며, 20세기는 국권을 상실한 식민지상황, 그리고 남북분열, 그리고 범세계적 냉전구도를 구조 지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대규모 전쟁, 그리고 분단국가의 이념대결이 우리의 연대기를 메꾸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민족국가의 등장과 함께 창궐한 제국주의의 모든 죄악의 산물이 결집된 역사를 살아가면서 우리 민중은 암암리 기독교라고 하는 새로운 정신문명을 하나의 초월적 구심체로서 신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신앙체계를 접했으며, 또 기독교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강렬한 유교문명의 상식적 바탕을 지닌 우리 한민족의 사람들이 사분의 일에 가까운 인구가 기독교를 신앙하고 있다면 그것은 종교심리학적 분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민족사적으로 고찰해야 할 현상일 수밖에 없다.
20세기의 근대화(Modernization)라고 하는 현상은 암암리 서구적 가치의 수용이라는 대세(大勢)와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근대화가 반드시 서구화(Westernization)를 의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민족사의 현실은 ‘근대화 = 서구화’라는 검증되지 않은 등식에 의하여 지배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당수의 조선식자들이 ‘근대화 = 서구화’라는 등식에 부지불식간 또 하나의 가치를 얻어서 생각했으니 그것이 바로 기독화(Christianization)라는 것이다.
근대화 Modernization |
= | 서구화 Westernization |
= | 기독화 Christianization |
과연 이러한 도식을 우리는 우리 삶의 정당한 가치관으로서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나 정작 핵심적 문제는 이러한 도식의 정당성에 관한 논박에 있지 않다. 불행하게도 상기의 도식을 자신의 검토되지 않는 신념체계로서, 그러니까 종교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국의 엘리트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현실이 먼저 지적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구유학의 깃발을 휘날렸으며, 법조계, 정계, 재계, 예술계, 학계, 교육계 등 한국문화 일반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엘리트층은, ‘보수’라는 말의 개념규정조차 애매하지만, 보수의 논리에 헌신하는 경향성을 강하게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엘리트층의 상당수가 상기의 도식을 자기의 신념체계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도라해서 근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과학과 같은 근대화의 선두에 서있으면서도 서구적 가치에 자신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방비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화 = 서구화 = 기독화’라는 가치관을 수용하든 하지않든간에 대부분의 한국식자들이 인류의 역사를 서구중심으로 생각하고, 모든 인류의 경험의 축적의 형태가 오로지 그들이 생각하는 서구적 근대의 가치를 발현하기 위한 목적론적 체계(a teleological system)라고 인지하는데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감증세(無感症勢)는 일차적으로 무지에서 온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는 의도적 무지가 아니라 별다른 정보가 부재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매우 상식적인 현실이다. 이러한 상식적 현실이야 말로 가증스럽고 가공스러운 것이다. 비의도적 무지는 아무 곳에나 쉽게 별 저항없이 침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땅의 젊은이들의 가치관과 비젼을 형성하는 교과서가 모두 그러한 왜곡된 서구중심의 역사기술,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모든 무형의 가치기술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것이다.
좌ㆍ우이념의 말초적 시비는 있으되, 이러한 거시적이고도 본원적인 문제에 대한 대책이나, 새로운 인식이나, 정보의 발굴은 없는 것이다. 서양역사가 인류사의 주류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텍스트를 장악하고, 철학사, 건축사, 음악사, 미술사, 문학사 등등의 모든 개론이 그에 준하여 기술되고 있다. 중국문명에 관한 기술도 소외된 변방의 이야기처럼 들리고, 인도문명에 관한 이야기도 이그조틱한(exotic, 이국적인) 판타지 테일(tale, 이야기)처럼 들리며, 중동문명에 이르게 되면 흑암의 커텐이 차단의 막을 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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