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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 - 2. 동양화의 화법으로 구름을 묘사하다 본문

책/한문(漢文)

말 머리에 무지개가 뜬 광경을 적은 글 - 2. 동양화의 화법으로 구름을 묘사하다

건방진방랑자 2020. 4. 1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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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양화의 화법으로 구름을 묘사하다

 

 

바다 밖의 뭇 산에는 저마다 작은 구름이 피어올라 멀리서 서로 응하며 마구 독기를 품고 있었다. 간혹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렸고 해 아래에서 우르르 쾅쾅 천둥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으니 사방이 온통 컴컴해져서 한 치의 틈도 없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번개가 번쩍여, 겹겹이 쌓여 있어 주름이 잡힌 구름 1천 송이와 1만 이파리가 비로소 보였는데, 흡사 옷의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 것 같기도 하고, 꽃에 윤곽이 있는 것 같기도 하여, 모두가 농담濃淡이 있었다. 천둥소리는 찢어질 듯하여 흑룡이라도 뛰쳐나올 성 싶었다. 그러나 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 멀리 바라보니 연안延安과 배천白川 사이에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

海外諸山, 各出小雲遙相應, 蓬蓬有毒. 或出電, 耀威日下, 殷殷有聲矣. 少焉, 四面䢔遝正黑, 無縫罅. 電出其間, 始見雲之積疊襞褶者, 千朶萬葉, 如衣之有緣, 如花之有暈, 皆有淺深. 雷聲若裂, 疑有墨龍跳出, 然雨不甚猛, 遙望延白之間, 雨脚如垂疋練.

점입가경이다. 이 단락은 번쩍거리는 번개와 요란한 천둥소리로 가득 차 있다. 연암의 시선은 처음에는 남쪽 먼 바다의 섬을 향하고, 그 다음에는 가고 있는 길 위의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마지막에는 서북쪽으로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연안과 배천을 향하고 있다. 남쪽 먼 바다의 섬이란 영종도나 시도나 무의도 등 서해 바다에 옹기종기 떠 있는 섬들을 말한다. 황해도 연안과 배천은 이른바 연백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멀리서 바라봤을 때 툭 트인 시야가 몽몽한 빗줄기가 한눈에 들어왔을 터이다.

하늘이 노하기라도 한 듯 독기를 잔뜩 품은 구름들이 멀리 피어오르고, 번갯불은 번쩍거리고, 천둥은 우르르 쾅쾅 귀를 찢는다. 그러다가 이내 천지가 꽉 닫혀 버린 듯 사방이 시커메져 빛 하나 없다. 바로 그때 다시 번갯불이 치면서 그 섬광에 잠시 구름이 힐끗 보인다. 찰나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이 구름은 너무도 아름답다. 그래서 연암은 겹겹이 쌓인 그 구름의 무늬며 질감이며 음영을 안간힘을 써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옷의 주름 같기도 하고, 1천 송이 꽃 같기도 하고, 1만 개의 잎사귀 같기도 한데, 저마다 모두 농담濃淡을 갖고 있다. 연암이 구름을 이렇게 묘사할 때 그는 심중에 동양화의 화법畵法을 떠올렸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묘사 방법은 구름에 준(무늬)을 넣는다든지 수묵水墨의 농담濃淡을 이용해 선염渲染(바림)을 함으로써 구름의 음영과 입체감을 표현하는 저 동양화의 화법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한편,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를 흑룡이 뛰쳐나올 것 같다는 심상心象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소리를 구체적 형상과 연결 지음으로써 동세動勢가 넘치고 생동감이 강한 필치를 보여준다.

이 단락은 그러나()”로 시작되는 마지막 문장에서 문세文勢가 전환되는 바, 이 점 묘미가 있다. “비는 그다지 심하지 않아서라는 말이나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라는 말에서, 지금처럼 무섭고 천지가 닫힌 듯한 상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느낌이 전달된다.

연안과 배천 사이에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워 있었다(白之間, 雨脚如垂疋練).” 이 시적 표현은 너무나 신묘해 거듭 탄성을 발하게 된다. ‘빗발이라는 말의 원문은 우각雨脚인데, ‘이라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멀리서 바라본 비 내리는 모양을 회화적으로 운치 있게 표현해 냈다. 연암 필법의 용의주도함이 이 한 글자에서도 잘 확인된다. 빗발이 흰 비단처럼 드리웠다는 표현은 대단히 부드럽고 온화한 뉘앙스를 풍기는데, 이런 뉘앙스는 이 대목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래서 뭔가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상황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한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1. 자연을 담아내는 신채나는 표현

2. 동양화의 화법으로 구름을 묘사하다

3. 능청스러워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미학

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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