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능청스러워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미학
이 단락은 변화로 가득하다. 시시각각 바뀌는 눈앞의 정경을 따라잡기 위해 연암은 “문득(忽)” “잠깐 새에(指顧之間)” “갑자기(忽)” “처음(初)” “이윽고(已而)” 등등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부사어들을 숨 가쁘게 동원하고 있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어느새 활짝 개고, 고운 해가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똑같은 구름이건만 조금 전에는 험상궂던 것이 지금은 밝고 상서로운 빛으로 싹 바뀌었다. 하늘의 조화란 이런 것이다. 이 대목에서 연암의 필치는 아주 경쾌하고 명랑하다. 청초하고 산뜻한 풍경을 대하면서 그 마음이 환해져서일 것이다.
바로 이때다, 무지개가 하늘에 쫙 떠오르는 건, 그것은 처음에 말 머리에서 시작되어 순식간에 하늘까지 쭉 뻗친다. 연암은 문득 생각한다. 이것을 문으로 삼아 저편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이것을 다리로 삼아 건너편으로 건너갈 수 있겠구나라고. 하지만 그것은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을 듯이 보임에도,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 무지개란 바로 그런 것이다. 어린 시절 무지개를 잡아보려고 얼마나 달음박질치곤 했던가. 그리고 그것이 허망한 일임을 이내 깨닫고 망연자실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볼 때 그것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답던가.
더구나 연암이 본 무지개는 그 아치arch가 말 머리에서 시작되어 평야를 가로질러 강화해협에 꽂힌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자기 앞에서 시작되어 물에서 끝나는 모양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으리라 상상된다. 연암이 느낀 미감은 마지막 구절, 즉 “산기슭을 돌아 나오며 바라보니 강 따라 백 리 사이에 강화부 외성의 흰 성가퀴가 햇빛에 반짝거리고, 무지개 발은 아직도 강 한가운데 꽂혀 있었다(轉出山足, 望見沁府外城, 緣江百里, 粉堞照日, 而虹脚猶揷江中也.)”라는 구절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 바로 이 절정에서 이 글은 단 한마디의 말도 덧붙이지 않고 종결된다. 이처럼 미감의 절정에서 느닷없이 글이 끝나기 때문에 독자는 한 편으로는 아연하고, 한편으로는 당혹스럽다. 하지만 이 당혹감은 금새 긴 여운과 선연한 인상으로 전환된다. 이처럼, 능청스러워 보일 정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종결부의 미학은 이 글 전편全篇을 이 마지막 구절에 수렴되게 하고, 이 마지막 구절에 초점이 맺히도록 만들고 있다. 연암은 사진으로 치면 몇 컷의 사진을 찍은 셈이고, 그림으로 치면 몇 폭의 그림을 그린 셈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마지막 장면을 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구절의 언어는 아주 형상적이고, 생신하다. 특히, “꽂혀 있었다(揷)”라는 표현은 대단히 참신하고 뾰족하다. 그래서 정말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연암이 구사하는 언어의 생명력이 이런 데서 잘 드러난다.
사족 한 마디, 연암의 무지개를 문이나 다리로 상념한 것을 두고, 이상세계를 희구했다느니, 저 너머 미지의 세계를 상상했다느니 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런 해석은 멋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적 무지개의 관념을 연암의 글에 덧씌운, 따라서 완전히 잘못된 해석이다. 이글에서 연암이 무지개를 문이나 다리로 상념한 것은, 자신이 곧 해협을 건너야 했기 때문이다. 연암은 김포평야에서 시작해 해협을 가로질러서 떠 있는 무지개를 보면서, 문득 홍예교虹蜺橋(=무지개 다리)처럼 저걸 밟고 해협을 건널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해본 것이다.
▲ 전문
인용
4. 총평
- 문수산文殊山: 김포시 월곶면 강화대교 바로 앞에 있는데 해발 376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김포평야 가운데 불쑥 솟아 있어 아담한 운치가 있으며, 산등성이에는 숙종 때 쌓은 산성이 있었다. 이 산성은 고종 3년인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문수산 산자락의 서쪽을 돌아 조금만 가면 나루가 나온다. 이 나루는 강화해협을 사이에 두고 갑곶과 마주보고 있다. 갑곳에서 동으로 10리를 가면 바로 강화읍이다. [본문으로]
- 강江: 곧 강화해협을 가리킨다. [본문으로]
- 심부외성沁府外城: 강화도의 동쪽 해협을 따라 긴 성이 축조되어 있었던바, 이것이 곧 강화부 외성이다. 이 성은 고려 제23대 고종이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면서 처음 쌓았으며, 조선조 광해군 10년(1618)에 수축하고 영조 21년(1745)에 고쳐 쌓았다. 연암이 본 건 영조 때 고쳐 쌓은 성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다 무너졌으며 오직 하점면 망월리와 불은면 오두리에 그 일부가 남아 있다. 한편 현재의 강화읍을 둘러싸고 있는 성을 강화 내성內城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 성가퀴(堞):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을 말한다. [본문으로]
- 무지개 발(虹脚): 무지개의 밑동, 즉 무지개의 지상에 닿은 부분을 말한다. 앞에 나온 빗발이라는 말과 서로 호응을 이루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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