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총평
1
이 글은 1770년(34세) 아니면 1771년(35세)에 창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암이 백탑 부근에 살 때다. 연암은 이 시기에 쓴 자신의 글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엮었으니, 하나는 『공작관 글 모음孔雀館文稿』이고, 또 하나는 『종북소선鍾北小選』이다. 전자는 1769년 겨울에, 후자는 1771년 겨울에 엮었다. 이 글은 당시 『종북소선』에 수록했던 글이다.
『과정록』에 보면 연암은 중년 이후 『장자』와 불교에 출입했다고 했는데, 이 글은 『장자』의 어법과 사고방식이 아주 짙게 배어 있다. 하지만 연암이 『장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불가지론不可知論이나 상대주의에 빠진 것은 아니다. 그는 사유를 혁신하고, 감수성을 쇄신하며, 관점을 새롭게 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장자』를 활용햇던 것이다. 법고창신의 관점에서 『장자』를 읽은 셈이다.
2
동서고금에 ‘말똥구슬’이라는 제목의 시집이 달리 또 있을까? 세상에! 이 제목을 통해 18세기 조선 지식인이 도달한 상상력의 수준과 그 분방한 사고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3
이 글에 제시된 연암의 인식론적 견해는 연암이 당대에 취한 사회 정치적ㆍ미학적 입장과 결부시켜 관찰될 필요가 있다. 연암은 북학을 주장하며 청淸의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청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놓지 않았다. 이 점에서 연암은 북벌론이라는 하나의 극단과 청에 대한 사대주의적 흠모라는 또 다른 극단을 동시에 뛰어넘어 사유한 것이 된다. 당시 조선인으로서 이런 사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한편, 연암은 글쓰기에 있어서 새로움과 파격을 추구하면서도 옛 전통을 잘 활용함으로써 높고 깊은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는 연암이 ‘창신創新’이라는 한 극단과 ‘법고法古’라는 또 다른 극단을 동시에 지양함으로써 가능했다. 당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이 둘 가운데 어느 한쪽에 편향되어 있었으며 연암처럼 이 이분법 밖으로 뛰쳐나오지 못했다.
4
연암이 이 글에서 제시한 ‘중’과 ‘사이(間)’라는 개념은 주목을 요한다. ‘중’과 ‘사이’는 정당한 인식이 이루어지는 지점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유가 양성되는 틈이자, 창조가 빚어지는 공간이며, ‘나’와 사물, 주체와 타자가 만나 소통하는 미묘한 자리일 수 있다. 한국학은 이들 개념을 장차 사상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하리라 본다.
5
양극단과 이분법을 넘어서야 비로소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연암의 주장은 사실 오늘날의 한국인이 몹시 경청해야 할 주장이 아닌가 생각된다. 양극단, 이분법, 단세포적 양자택일은 참된 인식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중대한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 전문
인용
2. 이가 사는 곳
3. 짝짝이 신발
5. 중간에 처하겠다
5-1. 총평
7. 이 작품집에 나는 모르고 그대들만 아는 코골이는 알려주시라
7-1.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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