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계집의 노래
빈녀음(貧女吟)
허난설헌(許蘭雪軒)
豈是乏容色 工鍼復工織
기시핍용색 공침부공직
少小長寒門 良媒不相識
소소장한문 량매불상식
不帶寒饑色 盡日當窓織
부대한기색 진일당창직
惟有父母憐 四隣何曾識
유유부모련 사린하증식
夜久織未休 戞戞鳴寒機
야구직미휴 알알명한기
機中一匹練 終作阿誰衣
기중일필련 종작아수의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수파금전도 야한십지직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위인작가의 년년환독숙 『蘭雪軒詩集』
해석
豈是乏容色 工鍼復工織 | 어찌 얼굴색이 떨어지리오. 바느질 솜씨 좋고 다시 길쌈 솜씨도 좋은데 |
少小長寒門 良媒不相識 | 어려서 한미한 집안에서 자라나 좋은 중매쟁이 서로 모른다네요. |
不帶寒饑色 盡日當窓織 | 춥고 굶주린 안색 띠지 않고 진종일 마땅히 창가에서 길쌈한다네. |
惟有父母憐 四隣何曾識 | 오직 부모님만이 가련하다 하지만 이웃들은 어찌 일찍이 알리오. |
夜久織未休 戞戞鳴寒機 | 밤늦도록 길쌈 쉬지 못해 삐걱삐걱 차가운 베틀소리 울리네. |
機中一匹練 終作阿誰衣 | 베틀 속의 한필 비단은 끝내 어떤 아씨의 옷이 되려나. |
手把金剪刀 夜寒十指直 | 손으로 가위 금속 가위 잡으니 밤 추워 손가락이 굽히지 않네. |
爲人作嫁衣 年年還獨宿 | 남을 위해 시집가는 옷 짓지만 해마다 도리어 홀로 자지요. 『蘭雪軒詩集』 |
해설
이 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로, 허난설헌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어찌 내 인물이 남에 비해 모자란다 하리오? 인물뿐만 아니라 여자가 갖추어야 할 재능도 뛰어나 바느질도 잘하고 또 길쌈도 잘한다. 그런데 어려서 가난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좋은 중매가 나서서 나에게 중매를 서 주지 않는다. 손에 쇠로 된 가위를 잡고 새 옷을 짓는데, 밤이 되자 날씨가 너무 추워 열손가락이 오므려지지가 않아 옷을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다. 자신은 다른 사람을 위해 시집갈 때 입는 옷을 만들어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시집을 가지 못하고 해마다 다시 독수공방하고 있는 신세다.
허균(許筠)은 『학산초담(鶴山樵談)』에서, “우리나라 아낙네로서 시(詩)를 잘하는 사람이 드문 까닭은, 이른바 ‘술 빚고 밥 짓기만 일삼아야지, 그 밖에 시문(詩文)을 힘써서는 안 된다.’ 해서인가? 그러나 당(唐)나라 사람의 경우는 규수로서 시로 이름난 이가 20여 인이나 되고, 문헌 또한 증빙할 만하다. 요즘 와서 제법 규수 시인이 있게 되어 경번(景樊, 허난설헌의 호)은 천선(天仙)의 재주가 있고 옥봉(玉峯) 또한 대가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라 하여, 우리나라에 여류시인(女流詩人)이 적은 이유와 허난설헌의 시재(詩才)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27~12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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