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마을에 방조제를 만들다
해거방축(海居防築)
이익(李瀷)
穿渠移圃築防潮 鹹減禾生盡沃饒
聚落仍成居井井 鋤耰何患莠驕驕
誰敎山澤無遺利 可見平蕪免浪拋
碧海桑田容易變 良謀輸與訪芻蕘 『星湖先生全集』 卷之四
해석
穿渠移圃築防潮 천거이포축방조 |
도랑 뚫고 채마밭 옮겨 방조제를 만드니 |
鹹減禾生盡沃饒 함감화생진옥요 |
소금기 줄어 벼가 나와 다 풍요롭네. |
聚落仍成居井井 취락잉성거정정 |
취락이 이내 만들어져 거주지 정돈하고【정정(井井): 용모가 정돈되고 가지런한 것[容整齊]】 |
鋤耰何患莠驕驕 서우하환유교교 |
호미와 곰방메로 어찌 가라지 무성함【교교(驕驕): 풀이 무성하고 높다란 모양[草盛且高貌]】을 근심하랴. |
誰敎山澤無遺利 수교산택무유리 |
누가 산과 연못이 남김 없는 이익을 내게 하여 |
可見平蕪免浪拋 가견평무면랑포 |
풀 무성한 평지 함부로 버려짐을 면하게 할까. |
碧海桑田容易變 벽해상전용이변 |
푸른바다는 뽕나무밭으로 변하기 용이하니, |
良謀輸與訪芻蕘 양모수여방추요 |
좋은 계책을 보내주어 나의 계획【추요(蒭蕘): 보잘것없이 들리는 나무꾼의 말이라는 뜻으로 자신의 발언에 대한 겸사(謙辭)이다. 『시경』 「판(板)」의 “옛날 성현 말씀에 나무꾼의 말이라도 들어 보라 하셨다네.[先民有言 詢于芻蕘]”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을 꾀하겠다. 『星湖先生全集』 卷之四 |
해설
이는, 오늘의 간척(干拓)에 대한 선각자의 꿈이요 예언이다.
1ㆍ3구는 설계(設計)ㆍ시공(施工)ㆍ낙성(落成)이요, 2ㆍ4구는 그 결과의 효용(效用)이다. 5ㆍ6구는 국토 개발에 의한 토지 이용의 극대화(極大化)요, 7. 8구는 거대한 토목 공사의 가능성과, 널리 민중의 지혜에서 묘책(妙策)을 구할 것을 시사함이다.
노비를 해방하고, 양반도 생업에 종사하여 자활(自活)의 길을 찾으라고 역설해 온 작자이며, 개인의 대토지 점유(大土地占有)를 억제하는, 토지 제도의 개혁과, 국토의 개발 및 그 합리적이용을 촉구해 온 작자이다. 그러한 실학자의 안목에서, 당시로서는 한갓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일소(一笑)에 부쳐졌을 간척의 꿈을, 이미 이처럼 찬란하게 펼쳐 놓았던 것이다.
작자는 안산(安山) 첨성촌(瞻星村)에 주거하여, 평생을 국리민복을 위한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니, 그 질펀한 서해안의 굴곡 많은 간석지(干潟地)를 매양 바라보면서, 그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방도가 이처럼 확연하건마는, 현실로 이루어내지 못함을 또한 얼마나 애달파 하였을까?
이곳은 오늘날 간척 사업의 대역사(大役事)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소위 시화 지구(始華地區)로서, 그 설계는 이 대선각자에 의해 2백년 전에 이미 이렇게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맨 끝구 ‘양모수여방추요(良謀輸與訪芻蕘)’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선민유언(先民有言)’의 전주(注)에 이른: ‘옛날 어진 사람의 말에, 의심쩍은 일이 있으면 마땅히 나무꾼과 더불어 의논하라[古之賢者有言 有疑事 當與薪采者謀之].’와 같은 의취이다.
모든 학문이나 문학은 실제 사회에 유용한 것이 아니어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 작자였는지라, 그 시풍(詩風) 또한 월로 풍화(月露風花) 따위 낭만적ㆍ심미적 작풍(作風)과는 아주 대조적임을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흔히 이르기를, 시의 모태(母胎)는 감성(感性)이니, 또는 시란 진폭(振幅)이 큰 감동의 소생이니 한다. 그렇다면 이 시와 같은, 근본 지성적ㆍ의지적인 시에서는, 감정은 아예 배제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다. 특히 2ㆍ3ㆍ4구를 보라. 이는, 1구와 같은 방축 청사진의 일환이기는 하면서도, 그 청사진 위에 장차 현현(顯現)될 황홀한 낙토(樂土), 그리고 거기 깃들 주민들의 꿈 같은 생활상이 환상화(幻想畵) 같은 미래도(未來圖)로, 감동의 떨림을 머금고 있음을 본다. 곧 그 지성과 의지는 감성의 전류로 대전(帶電)되고 자화(磁化)되어 있는 상태에서임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지(知)와 의(意)가 정(情)의 충격으로 점화됨으로써 마침내 시로서 불타게 되었으니, 만일 생경(生硬)한 지와 의만이었다면, 한 편의 산문은 되었을망정 시로 승화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시에 있어서의 감정의 비중은 어느 경우에나 역시 큰 것임을 일깨워 주는 듯도 하다.
-손종섭, 『옛 시정을 더듬어』, 정신세계사, 1992년, 470~471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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