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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00. 뜻밖의 터널 여행담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00. 뜻밖의 터널 여행담

건방진방랑자 2021. 2. 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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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터널 여행담

 

 

오늘은 양구 남면 소재지까지 걸을 예정이다. 이미 터널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같은 방에서 잤던 아저씨와 이야기하면서 오늘은 양구까지 갈 거예요.”라고 했더니, “거긴 요즘에 터널이 잘 뚫려서 쉽게 갈 수 있어.”라고 하신다. 터널로만 다녀서는 재미없을 거 같아서 터널이 뚫리기 전에 만든 길도 그대로 있나요?”라고 물으니, “그대로 있지.”라고 말씀해주셨다. 오늘은 삥삥 돌더라도 양구로 가는 한적한 길로 갈 거다. 그래야 풍광을 제대로 느끼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이때까지만 해도 터널로만 걷게 될 거란 건 상상도 못했다.

 

 

 

뜻하지 않게 터널로만 걷다

 

그런데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쭉 뻗은 길만 계속 되는 거다. 다른 데로 빠지는 길은 없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조금 걷다 보니 처음으로 터널이 나왔다. ‘그래 이것만 통과하면 예전 길로 빠지는 길이 나오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터널을 통과하고 계속 가도 그 어디에도 샛길은 없더라. 연이어 터널이 나와서 그걸 통과하고 보니 어느새 양구더라.

뭐 이렇게 황당한 경험이 다 있을까? 그래서 오늘은 한적한 자연풍광을 묘사할 순 없게 됐다. 한껏 기대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어 아쉽고 섭섭하다. 그래도 아쉽지만 많이 지나왔으니 터널 여행담을 이야기해야 겠다.

교육학 용어 중에 물리게 하기라는 개념이 있다. 무언가 하나에 몰입하여 그것만을 하고 다른 건 하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쓰는 행동수정 방법이다. 그것만 질리도록 하게 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전태련 선생님은 유쾌한 예를 들어주셨다. 아들이 어느 날부터 침을 바닥에 뱉더란다. 혼을 내면 반항적으로 더 자주 하게 될까봐 물리게 하기를 적용하기로 했단다. 침을 뱉고 싶으면 지금부터 쉬지 않고 계속 뱉어보라는 말을 했더니, 아들은 좋다고 그때부터 침을 뱉기 시작하더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싹싹 빌더라는 이야기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코웃음을 쳤던 기억이 난다. 삼겹살을 질리도록 먹었다고 가정해볼 때, 그 당시엔 삼겹살을 먹고 싶지 않겠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먹고 싶어지니 말이다. , 단시일적(短時日的)으론 효과가 있을진 몰라도 영구적으로 고쳐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터널 체험을 해보니 물리게 하기란 것이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알겠더라.

 

 

▲ 긴 터널이라 대형 환풍기도 설치되어 있다. 맙소사~

 

 

 

터널 통과 공포체험

 

첫 번째 터널은 짧은 터널이다. 그 터널을 지날 때만 해도 예전에 갑사터널을 통과해본 경험이 떠올라 은근히 기대가 됐다. 그땐 좀 시끄럽긴 해도 시원하고 색다른 경험이었다는 느낌이 남아 있기에 첫 터널도 재밌게 통과할 수 있었다. 달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공명(共鳴)되어 꼭 전투기가 내 옆을 스쳐 가는 듯한 시끄러운 소리로 변한다. 그것조차도 즐거웠다니 뭐 말 다했다.

그런데 그 생각으로 들어선 두 번째 터널이 압권이었다. 두 번째 터널은 길이가 무려 3Km나 된다. 터널에 들어가니 지금까지 지나온 터널과 다르게 대형 환풍기가 돌고 있고 표지판까지 설치되어 있더라. 그만큼 규모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보통 1시간에 4Km를 걸으니까 무려 45분간을 터널에서 있어야 한다는 거다. 제트기 같은 자동차 주행 소리에 환풍기에서 나는 날카로운 기계음까지 겹치니 이건 보통의 소음정도가 아니다. 그쯤 되니 재미고 나발이고 없었다. 거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느껴지는 공포감까지 더해지니 공포체험이 따로 없더라.

온몸에서 진이 쫙 빠지는 느낌이다. 무방비 상태로 계속 걷다가는 미칠 것 같아서 잘 때 끼고 자는 이어플러그를 꼽았다. 그제야 좀 잠잠해지더라. 소음에서 해방되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하지만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이를 악물게 했다. 공기도 나쁘고 보이는 것이라곤 터널등 특유의 푸르스름한 색이 비친 터널과 자동차뿐이다. 그 두 번째 터널을 통과하니 양구더라. 근데 그 기쁨도 잠시 또 터널을 통과해야 했고 세 번째 터널을 나오자마자 바로 앞에 또 터널이 있더라.

 

▲ 연거푸 터널을 걷고 있노라니 생지옥이 따로 없다.

 

 

물리게 하기의 전제조건과 국토종단의 필수품

 

이렇게 통과한 터널이 모두 합하여 6개다. 그중에 3Km 되는 게 제일 길었고 1.8Km, 1.2Km가 그 다음으로 길었다. 이건 터널의 향연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징그럽게 터널을 통과했으니 어찌 물리지 않을까?

터널을 도보로 통과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는 분들에겐 화천에서 양평으로 향하는 46번 국도의 터널 국토종단 패키지를 강추한다. 6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터널과 비슷한 모양의 길만 나와도 뒷골이 욱신욱신 할 거다. 이번 경험을 통해 국토종단의 필수품으로 우의와 함께 이어플러그가 자리 잡았다. 잠을 잘 때도 물론이지만 터널에서도 요긴하게 쓰이니 이만한 여행 보조기구가 또 있을까 싶다.

이쯤 되면 물리게 하기의 전제조건도 알 수 있다. 그건 하기 싫은 데도 불구하고 몇 번이고 계속해야만 하는 환경을 조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삼겹살을 몇 끼니고 계속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거다. 질려서 못 먹겠다고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다음엔 삼겹살의 자만 들어도 기겁할 거다.

 

 

▲ 화천에서 양구로 가려면 추곡터널, 수인터널, 웅진터널, 웅진1터널, 웅진2터널, 공리터널까지 6개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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