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으로 생활할 땐 나의 생활리듬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방 하나를 차지하고서 자고 있었다(원래는 3인 1실). 그런데 잠이 들려 하는 순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라. 난 그냥 이불과 베개만 가져가려는 줄 알았는데 이 방에서 취침하시려는 분이었다. 갑자기 환하게 불이 켜져 잠을 깼다. 피곤한 데도 자지 못하게 하니 이건 완전 극기훈련 같은 느낌이다. 그 후로 계속 뒤척였다. 그러다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잤다.
6년 만에 다시 하는 군대체험?
무슨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꿈에서 갑자기 사위(四圍)가 환해지는 거다. 혹 짙은 어둠 속에 있다가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터지며 환해지듯이 말이다.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라도 됐나~ 너무 환해서 무의식중에 눈을 가렸다. 그런데 그 상황이 꿈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더라. 대략 난감이다ㅡㅡ;; 무슨 일일까?
일어나 눈을 비비며 상황을 살펴보니 새벽에 같이 잤던 아저씨께서 새벽기도에 가기 위해 준비를 하고 계신 거였다. 잘 자고 있다가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며 뒤척일 새도 없이 잠에서 깨어나는 상황은 군생활 이후로 처음인 거 같다. 특히 GOP에 있을 때 이런 상황은 수시로 경험해야 했다. 비번이라 합동 투입 이후 전반야 투입 때부터 편안하게 자고 있는데 전반야 근무가 끝나고 후반야 근무조가 투입될 때 내무반엔 환하게 불이 켜진다. 그러면 비번을 제외한 후반야 근무조에 편성된 인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려 부산히 움직인다. 초반엔 그런 상황조차 익숙하지 못해 잘 자다가 그 시간이 되면 환해진 불빛과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에 잠이 완전히 깨곤 했었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게 되자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며 ‘난 비번이지롱’하는 행복의 함성을 내지르게 되더라. 군대를 제대한 지 어언 6년 만에 그와 같은 상황을 다시 경험하게 되니 피곤할뿐더러, 그 당시의 악몽이 매우 선명하게 느껴지더라.
힘들 때마다 기도원을 찾던 아저씨
나도 가야 하는 줄만 알고 벌떡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했다. 짐을 챙겨서 내려가 (숙소와 기도원이 꽤 떨어져 있다) 기도하고 아침을 먹고 바로 떠날 생각이었다. 짐을 싸는 나를 보더니 아저씨가 물으신다. 어제저녁에 얼핏 국토종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으니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다
아저씨: 교회 다녀요?
건빵: 안 다녀요.
아저씨: 그럼 어디까지 걸어가는 거예요?
건빵: 고성 통일전망대 까지요.
아저씨: 거의 다 왔네요. 그런데 교회에도 안 다닌다면서 왜 벌써부터 짐을 싸고 그래요? 새벽 기도는 굳이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 자세요.
건빵: 아침에 나갈 땐 어떻게 나가야 하는 거죠?
아저씨: 새벽기도가 끝나면 사람들이 씻으러 올라오거든요. 그리고 7시쯤에 밥 먹으러 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가는 차가 있으니까. 그걸 타면 되요.
그런 말을 듣고 나니 긴장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피곤이 밀려오더라. 낯선 환경에서 낯선 사람과 잠을 자야 했던 순간이 꼭 꿈인 것만 같다. 숙소에서 잠을 자던 분들은 다 가셨는지 시끌벅적하다가 조용해졌다. 잠은 오지 않지만 그냥 누워있었다.
아저씨가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그제야 나도 일어나 씻으러 갔다. 다 씻고 왔더니 아저씨도 씻고 오셨더라. 그때 잠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을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순 없었지만, 뭔가 답답한 일이 있을 때 기도원에 오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분에게 기도는 위안이고 피난처였던 거다. 하긴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신앙은 그런 거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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