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공간에서 닫힌 공간으로 바뀐 교회들
이렇게 터널을 통과하며 왔더니 2시에 양구가 4Km 남았다는 팻말이 보이더라. 생각보다 너무 일찍 왔다.
맘의 여유가 있으니 국토종단의 운치를 한껏 만끽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길거리에 신문지를 펴놓고 누웠다. 나무 그늘에 누웠는데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간간이 비친다. 한숨 자고 일어나도 될 정도로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국토종단을 하면서 한적한 곳에 누워 세상의 바쁨과는 반대로 여유를 즐기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야 하게 됐다.
여행을 떠난다는 건 잃어버렸던 나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다. 세상의 바쁨에 휩쓸리지 않고 난 나만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교회를 보는 씁쓸한 시선
그때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양구에 놀러 오려고 차편을 알아봤는데 오는 차가 없단다. 그래서 난 춘천에서 만나자고 제안했고 그게 성사됐다. 친구에게 문자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좀 더 걸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수 없게 됐다. 춘천행 버스가 있는 양구읍으로 들어가서 바로 잘 곳을 구하기로 했다.
4시 정도에 양구로 들어와 큰 교회를 찾아다녔다. 교회가 많기도 했고 큰 교회도 여럿 보여서 기대를 잔뜩 했는데 찾아간 교회마다 목사님이 안 계셨다. 18시 50분이 되도록 잘 곳을 확정 짓지 못하고 양구장로교회에서 누군가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다. 월요일엔 목사님들이 단체로 교회를 비우시는 날인가 보다. 하긴 월요일은 목회자의 휴식일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기에 한 바퀴 다시 돌고 왔다. 어랏! 그런데도 안 계시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교회에선 재워줄 것 같기에 20시 15분이 되도록 무작정 기다렸다. 그런데도 안 오시더라.
그래서 다시 한 바퀴 돌았지만 역시나 허탕이다. 그런데 한 바퀴 돌고서 돌아오니 사택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마냥 신이 나서 냉큼 사택으로 올라갔다. 운 좋게도 그때 사모님이 교회차를 끌고 나가시려는 거였다. 타이밍 굿^^ 다짜고짜 창문에 대고 사정을 얘기했더니 목사님께 전화를 하신다. 그런데 바쁘신지 계속 목사님이 전화를 끊으시자 사모님이 문자를 보내셨다. 잠시 후 내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드디어 잘 수 있게 되려나 보다’하는 생각으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내 기대와는 달리 교회문이 잠겨 있고 열쇠를 가진 분이 지금 안 계시기에 어쩔 수 없다고 하시더라.
교회가 대형화ㆍ현대화 되면서 점차 교회는 ‘열린 장소’에서 ‘닫힌 장소’가 되고 말았다. 예전엔 누구나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도 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도 있었는데 이젠 예배드릴 때 외엔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엔 ‘도선생(盜先生)’이나 ‘추수꾼(신천지 일꾼들을 일컬음)’의 책임도 있을 테지만, 자기들만의 리그로 만든 교회의 폐쇄성도 한몫 했던 거다. 그들이 같이 나누고 같이 사는 세상의 비전을 보여줘서 교회는 ‘지역민 공동의 자산’이고 교회 기자재는 ‘지역민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누가 교회를 비판하고 기자재를 훔치려 하겠는가? 그러지 못하고 교회는 점차 교인만을 위한 장소가 되고 심지어 목사의 사적 소유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회의 굳게 잠긴 문을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더라.
6시간 만에 잠자리를 얻다
일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젠 어디로 가볼거나?
무작정 내려가 다른 교회를 찾아서 갔다. 그 교회는 닫혀 있었지만 별관에선 탁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 들어가려 했지만 별관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갈까 망설이다가 그냥 기다리기로 했다. 10시 정도 되어 탁구 치시던 분들이 나오시더라. 난 전도사님인 줄 알고 사정을 이야기하며 동정심까지 유발하려 했다. 그런데 전도사님은 아니었고 그냥 교회 성도님이시더라.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에서 애처롭게(?) 얘기했더니 한참을 여기저기 전화하시더니 기도실에서 잘 수 있게 해주셨다. 다행히 전기장판에 이불까지 풀세트로 갖춰져 있더라. 일이 이렇게도 풀리는 구나^^
10시가 넘어서야 잘 곳을 정하게 되다니,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적은 이번 국토종단 중 처음 있는 일이다. 4시부터 잘 곳을 찾았으니 6시간을 헤맨 것이다. 교회가 많던 이곳에서 헤맸다고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더라. 교회가 많다고 좋아할 것은 아닌가 보다. 교회가 한 군데 있더라도 나그네에게 열려 있으면 충분하다.
‘교회’라는 이름은 같은데 목사님이 어떠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연기군에서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기저기 찔러볼 게 아니라 한 군데에 온 마음을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이 교회에서 기다리지 않고 다른 교회로 갔다면 내가 다른 곳에 간 사이에 이분들도 뿔뿔이 집으로 흩어졌을 것이다. 아~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어찌되었든 지금에라도 이렇게 누워 잘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잘 자라. 건빵!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순두부백반 |
5.000원 |
총합 |
5.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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