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수 있다는 축복과 끝맺음의 힘듦
확실히 더워진 게 느껴진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난다. 거기에 모자까지 썼으니 머리는 더욱 뜨겁게 느껴진다. 이런 날씨엔 왠지 쉬고 싶다. 하지만 덥다고 쉴 순 없다. 앞으로 더 더워질 것이기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선선할 때 빨리 걸어서 끝내는 게 낫다. 어느덧 여행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고 내일은 비도 온단다. 얼마 남지 않은 국토종단,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지.
일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던 순간
어제 쉬어서인지 오늘은 걷는 게 왠지 새롭게 느껴진다. ‘근 한 달째 걸었으면 이미 익숙해질 만도 할 텐데 이제야 웬 새로운 느낌이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걷는 것 자체가 남다르게 느껴졌다. 한 걸음씩 걸으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 것이다. 지금껏 걷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평범한 일이었다. 그건 국토종단을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걸을 수 있다는 게 ‘축복’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의식의 전환이 있게 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 대답하면 허무할지는 몰라도 아무 일도, 아무 사건도 없었다. 단지 어느 순간 내 주위의 평범했던 것들이 낯설게 보이듯 내 자신의 모든 게 특별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이다. 나의 걸음걸이를 의식하며 걸어간다. 아~ 지금까지 이렇게 꿋꿋이 다리는 제 역할을 하며 여기까지 나를 데려온 거구나. 아~ 내가 걸을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다.
끝에 이르러 마음이 붕 뜨다
그런데 걷는 것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해서 힘이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더욱이 바람 한 점 없는 날에 뜨거운 햇살까지 받으며 걷고 있으니 고통스럽기까지 하더라. 그 순간 갑자기 ‘여기서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목적지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왜 이런 생각을 하냐고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산에 올라본 사람은 알 것이다. 정상이 보이는 그 순간이 가장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저번에 인용한 『논어』의 “산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자면 한 삼태기를 더 보태면 산이 되는데도 그걸 하지 못해 그치는 것도 내가 그치는 것이며”라는 말이 딱 이 말일 것이다.
모든 일은 끝맺음이 더 어려운 법이다. 거의 끝나간다는 생각이 마음을 해이해지게 만들며 여기까지 온 것도 대단하다고 합리화하며 나약해지게 하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마음을 잘 조절해서 끝맺음까지 제대로 한 사람은 대단한 것이다. 과연 난 스스로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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