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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I. 결론과 더 읽을 것들 - 2. 장자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비인칭적 주체의 소통’이 가진 문제점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I. 결론과 더 읽을 것들 - 2. 장자철학의 가능성과 한계, ‘비인칭적 주체의 소통’이 가진 문제점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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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인칭적 주체의 소통이 가진 문제점

 

 

장자에게 매개에 의해 미리 규정된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매개없는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로 회복하는 관건은, 전적으로 주체의 마음의 문제로 환원된다. 그래서 좌망(坐忘), 심재(心齋)와 같은 수양론은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이 된다. 그런데 이 경우 타자라는 요소는 결코 장자의 수양론만으론 해소되지 않는 무엇이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장자에 따르면 완수된 소통에 대한 규정은 어떤 성격의 타자와 조우했는지의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다시 말해 장자가 권고한 대로 비인칭적인 주체로 변형되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타자와 다시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 비인칭적인 주체는 타자에 맞게 임시적 주체로 현실화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내가 조우한 타자가 어떤 타자인가라는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이 경우 내가 조우하는 타자를 이론적으로 두 가지 예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인칭적인 자의식을 가진 인칭적인 타자이고, 둘째는 비인칭적이고 유동적인 마음을 회복한 비인칭적인 타자다.

 

비인칭적인 주체로서 내[]가 인칭적 주체와 조우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그가 극악무도한 이기주의자라면, 나와 그의 소통은 결국 그의 고착된 자의식과 판단을 수용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나의 임시적 주체 형식도 이기주의를 띠게 된다. 그렇다면 이 경우 나의 소통이란 무엇을 하기 위한 소통인가? 더러운 것이 앞에 있을 때 거울은 더러운 것을 비추듯이, 비인칭적인 마음을 회복한 나는 그의 극악무도한 이기주의를 수용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아무리 자신의 고착된 자의식을 비웠다고 할지라도 이 경우 나는 제3자가 보았을 때, 이기주의를 고착된 자의식의 내용으로 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물론 장자는 이 제3자와 조우한다면, 비인칭적 주체는 이 제3자의 고착된 자의식의 규정을 다시 받아들이면 된다는 식으로 변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은 단순히 한두 사람의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복수적인 타자들과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장자의 이런 해법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

 

반면 비인칭적 주체로서 내가 비인칭적 타자와 소통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경우 고착된 인칭적 자의식을 주체나 타자는 모두 제거했기 때문에 이들의 소통은 거울과 거울이 마주 서 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양쪽의 거울은 상대방의 거울을 비추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을 비추고, 이런 식으로 서로 무한히 비추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 또한 일상적 의미에서의 소통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저 자신의 모습(맑은 거울)만을 비추는 기이한 상태가 아닌가? 무매개적 소통이라는 이념은 타자의 타자성을 받아들이려는 데 있는데, 그 타자가 자신과 동일하다면 무매개적 소통은 이 경우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자에게는 타자와의 소통이 완성되었다는 주체가 비인칭적인 주체로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타자와의 소통은 비인칭적인 주체가 자신이 조우한 타자에 맞게 임시적 주체로 끊임없이 현실화되는 것으로 완성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장자가 강조했던 양행(兩行)이라는 전언의 철학적 함축이다. 그런데 만약 조우한 타자가 비인칭적 타자라면 비인칭적인 주체는 결코 임시적 주체로 현실화될 수 없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소통이 이루어지지도 못한 것이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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