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단독자[獨]의 철학적 의미와 함축
1. 철학적인 ‘외(外)’의 의미
‘좌망(坐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단독자 이야기’도 신비스러워 보이는 수행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얼른 보면 철학에서는 다룰 수 없는 영역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옳은 인상이다. 왜냐하면 장자는 지금 여기서 우리의 주체 형식의 변형을, 다시 말해 이론적 체계가 아닌 실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말이 우리가 이 이야기를 분석할 수 없음을 함축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구체적으로 이런 실천이 어떻게 수행되는지에 대한 사실적 이해보다는 이 실천이 지닌 철학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주목하면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충분히 독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단독자 이야기를 읽었을 때 우리의 눈에 띄는 것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외(外)라는 글자다. 이 글자는 직역을 하면 ‘바깥으로 여기다’를 의미하고, 잊는다[忘]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외래는 글자를 도외시하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직역을 해서 ‘바깥으로 여긴다’로 그냥 그대로 해석해도 된다. 문제는 어떻게 이해하든지 이 외라는 글자는 세계[天下]ㆍ대상[物]ㆍ삶[生]이라는 언어나 관념을 나 자신으로부터 밖으로 보낸다는 의미다.
독자들은 장자 당시 맹자(孟子)와 고자(告) 사이에 이루어졌던 ‘인의(仁義)가 내(內)인가 외(外)인가?’라는 논쟁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 논쟁은 보통 ‘인내의외(仁內義外) 논쟁’이라고도 하는데, ‘인의라는 윤리적 규칙의 근거가 주체의 내면에 있는가 아니면 주체의 외면에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여기서 사용되는 내와 외라는 개념은 철학적으로 많은 함축을 지닌다. 인간의 주체를 설명할 때 어떤 행동 A를 내로 본다는 것은 A를 행위 주체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 즉 필연적인 본질로서 생각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 어떤 것을 외로 본다는 것은 그것이 문제되는 행위 주체와는 전적으로 무관한 어떤 것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 경우 A는 인간행위 주체와는 무관하고 단지 우연적인 관계만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장자가 여기서 잊는다라는 것의 의미를 명확하게 외라고 설명하고 있을 때, 그는 이 외라는 글자가 가진 당시의 철학사적 쟁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철학적 문맥에 따라 장자가 외라는 글자를 사용했다면, 그것은 세계도, 대상도, 삶도 나에게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장자가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서 장자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사유와 주체 중심적으로 고려되는 세계ㆍ대상ㆍ삶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해 여기서 장자가 외의 대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나, 대상이나, 삶은 사유나 주체에 의해 매개된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판단은 결과론적 이야기일 뿐이다. 이것들을 외로 여기는 순간에는 상당한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을 처음 읽는 독자는 장자가 지금 세계ㆍ대상ㆍ삶을 모두 초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는 아직도 많은 연구자들의 연구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우리는 세계ㆍ대상ㆍ삶을 잊은 후 도달하게 되는 주체 형식인 단독자를 명확하게 규정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생사라는 관념마저도 우연적이라고 포기되었을 때, 도래하게 되는 새로운 주체 형식 혹은 장자가 권고하는 이상적 실존 형태인 단독자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규정한다면 장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