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는 글: 트위스트 교육학으로 트위스트를 추자
숨 가쁘게 달려갈 때가 있다. 그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목표한 곳에 이르게 되면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거라 기대될 때, 맹목적으로 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몇 년을 ‘열심히만 살면 무엇이라도 이루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하지만 막상 그 목표지점에 이르게 된 순간엔 환희보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지?’라는 회의감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열심히 살았고 무언가 이루어왔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공허함이나 씁쓸함이 나를 휩쓰는 까닭이다. 어찌 보면 산다는 건 앞을 향해 달리는 것뿐만 아니라, 옆을 바라보며 여유도, 뒤를 돌아보며 성찰의 시간도 가져야한다. 여유와 성찰은 달리 말하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일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저 주어진 길이기에 왔다거나, 사느라 바빠서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거나 하는 말들은 혼란, 갈등을 만들기 싫어서 스스로 합리화한 말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 길은 하나만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하나만 있는 것처럼 그 길을 가려 한다.
맹목적인 질주는 회한을 낳고
단재학교에서 지낸지 어느덧 5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게 감격스러웠고, 교사라는 직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교사라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으며, 지금껏 고민해왔던 교육관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는 게 행복했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을 느끼며 5년 간 때론 열정적인 교사처럼, 때론 내가 미처 학창 시절에 해보지 못한 것을 아이들과 함께 해보는 열린 교사처럼, 때론 아이들의 미성숙을 질타하며 ‘그렇기에 좀 더 성숙한 내 말을 따라야 해’라고 윽박지르며 내 방식대로만 하는 막돼먹은 교사처럼 지내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5년이란 시간은 속이 꽉 찬 과일처럼 빼곡한 추억들이 아로새겨진 순간이었기에 아쉬움은 없다.
▲ 5년간 나름 최선을 다하며 시간을 지내왔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다고 회한이 없는 건 아니다. 맹목적인 질주 후에 찾아오는 회의감이 나를 감싸며 흔들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말로 정의할 수 없고, 이유 또한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난 그 시간을 맘껏 즐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5년이란 시간동안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마음만 앞섰을 뿐, 그 시간을 즐겨보자는 마음을 갖진 못했다. 현재 한국 사회가 늘 요구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달려라’, ‘그 자리에 머무는 건 퇴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 늘 마음은 조급해졌고 그로 인해 무언가 이루어가야만 한다는 신화에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여유로워지면 무언가 하나라도 하려고 발버둥 쳤으며, 쉬는 시간에도 쉬지 못하고 마음은 늘 불안했다. 바로 그런 식의 불안하다는 느낌이 나 자신에 대한 불만족으로, 지내온 시간에 대한 회의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간혹 차가운 벌판에 내몰린 것처럼, 한겨울에 맨몸으로 있는 것처럼 회한이 몰려올 때가 있다.
그렇기에 맹목적인 질주가 아닌 성찰적인 걸음으로
그 기간 동안 불안과 회의감은 커져만 갔다. 그건 바로 마음의 불안, 미래에 대한 걱정, 현실에 대한 불만족 등이 섞여 현재의 만족도를 크게 낮추었으며 늘 쭈뼛쭈뼛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좀 더 느린 걸음으로 주위를 돌아보고, 때론 아예 걸음을 멈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가기로 한 것이다. 멈춤은 낙오가 아닌, 성찰의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찰은 ‘내 안에 침잠하여 나 자신을 쪼개고 분석하는 것’이 아닌, ‘주위 사람들 속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맹목적으로 질주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멈춰 서서 그 순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걸 쉽게 수용하긴 힘들다. 그건 ‘효율’, ‘능률’, 또는 ‘성취’라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에게 ‘삶’, ‘배움’, ‘성숙’과 같은 손에 잡히지 않고 바로 인식되지 않는 어휘꾸러미를 던져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그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산다는 게 무언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런 것들을 받아들이며, 올 한해 신나게 살아보고자 한다. 분명 좌충우돌할 테고, 갈피를 잡지 못해 두리번거릴 테지만, 그렇게 맘먹고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작년 전체여행에서 아이들은 맘껏 춤을 추며 그 시간을 즐겼다. 나에게도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마음이다.
트위스트 교육학으로 트위스트 추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 동섭쌤이 에듀니티에서 ‘트위스트 교육학’이란 현장 강의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 초에 경인교대에서 동섭쌤이 했던 교사 대상연수를 들으며 여전한 동섭쌤의 호소력 있는 강의 내용과 ‘개체식별 가능한’ 신선한 시선이 배움에 대한 열망을 활활 태웠었다. 그리고 ‘신라대 박동섭’이 아닌 ‘독립연구자 박동섭’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 편으론 분개하게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오히려 동섭쌤 자질을 맘껏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구나’하는 생각에 축하하게도 했다. 다산은 정조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할 땐 수원화성을 만든 것 외에 학문적인 부분에선 빛을 발하지 못했으나, 강진으로 유배당한 후엔 문사철을 아우르는 500권의 책을 저술하며 소위 ‘다산학’을 발흥시키며 맘껏 자질을 뽐냈다. 이처럼 동섭쌤도 충분히 다산과 같이 독립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교육학에 갇히지 않는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방면의 지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며, 그건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교학상장’은 배움과 가르침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말이다. 가르치기 때문에 배우게 되고, 배우기 때문에 가르치게 되는 다이내믹한 흐름을 표현한 말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동섭쌤이 하루 빨리 서울에서 강의를 하길 기다렸다. 그러던 차에 드디어 강의 일정이 공개됐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날쏘냐?’라는 말처럼, 공개되자마자 수강신청을 하게 되었고 마침내 시간이 흘러 오늘 첫 강의가 있는 날이 오고야 만 것이다.
▲ 드디어 동섭쌤의 강의가 시작된다. 기다리던 안내문이라 가슴이 뛰었다.
다섯 번의 강의를 트위스트 추듯 즐기길
처음부터 ‘성찰의 시간’을 운운하며 한껏 무게를 잡았지만, 그렇다고 이 강의를 듣는 내 마음이 무겁다는 뜻은 아니다. 고놈의 몹쓸 병인 ‘진지충’ 같은 마음이 앞서서 의미부여를 하다 보니 무거워진 것일 뿐, 강의를 듣기 전의 마음은 오히려 가볍고, 앎의 희열에 들떠있다.
그런 마음가짐이 가능한 이유는 동섭쌤의 강의는 무거운 이야기도, 그렇다고 학술적인 이야기도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에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땐 『닥터 진』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보여주기도 했고, 올해 초 경인교대에서 강의를 들었을 땐 동천홍의 울음소리를 연거푸 들려주기도 했다. 그건 곧 기승전결의 흐름에 따라, 준비해온 내용에 따라 기계적으로 흘러가고 정형화된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강의가 아닌, 강의하는 사람과 청중이 함께 호흡하며 큰 틀의 강의 내용은 전달하되 다양한 이야기로 연결되고 확장되며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방식으로 전해주는 강의였던 것이다. 그러니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듯 들려오는 메시지에 주목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말과 말 사이를 배회하면 된다.
▲ 강의 제목이 아주 박동섭적이다.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이다.
이 강의는 총 5강으로 진행되는데, 역시나 강의 주제는 동섭쌤 다운 ‘발작적으로 떠올랐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 주제’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제를 듣는 것만으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의 강의야?’라는 생각이 들 법하지만, 어찌 보면 그걸 통해 동섭쌤은 ‘무슨 내용일 거라 기대하지 않고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어떤 관념이나 아는 것 없이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트위스트를 추듯, 와서 맘껏 어우러져 볼 생각이다. 아마도 이 강의를 듣고 남기는 기록들은 강의 내용과 내가 어떤 동작으로 트위스트를 췄는지에 대한 것일 게다. 그게 때론 물 흐르듯 경쾌한 동작일 수도 있고, 때론 스텝이 꼬여 흐름이 끊긴 어색한 동작일 수도 있다.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 현장으로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자.
▲ 이 사진은 경인교대 강의 때의 사진. 이제 동섭쌤의 강의를 들으며 맘껏 스텝을 밟아볼 차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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