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①강: 강의와 여행의 공통점
여행을 떠나보면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스스로에게 불만족하는 사람일수록 짐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2박 3일의 여행을 갈 때, 여학생들은 캐리어에 짐을 하나 가득 싣고도 가방까지 챙겨온다. 아마 그런 이유 때문에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는 걸 거다.
그런데 한 달간 지리산 종주를 떠나보니, 짐은 어찌 되었든 나를 억누르는 불안의 증표라는 것을 알겠더라. 걱정이 앞서 이것저것 우겨넣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내 어깨를 누르는 무게감은 여행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그러니 여행을 떠난다는 건 ‘불안과 대면하는 일’임과 동시에, ‘걱정을 인정하고 짐을 최소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여행은 나의 마음의 불안을 알게 하고, 강의는 내가 어떤 틀에 갇혀 사는지 알게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강의를 듣기 전의 공통점
그렇다면 몸으로 떠나는 여행 말고, 생각으로 떠나는 여행(강의를 듣는 것)은 어떨까? 강의를 듣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게 많고, 신경 써야 할 게 많을까?
일반적으론 강의를 듣기 위해서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3시간의 짧은 강의엔 강사가 살아온 내력, 고민의 흔적, 연구의 고갱이가 담겨져 있다. 그러니 그걸 알아듣기 위해서는 그가 쓴 책을 읽고, 강사의 이력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단서들을 통해 그 사람이 던지는 말의 본질에 가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 강사의 책을 읽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야 과연 강의 내용이 제대로 들리는 걸까?
하지만 처음에 여행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처럼, 생각으로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강의를 듣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은 ‘주위 사람들에게 없어 보이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강사의 얘길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불안이 섞여 있다. 그러니 그런 불안과 걱정을 없애고자 조금이라도 이해의 단서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강의를 듣기 전에 관념이 꽉 차서 강의 내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철저히 준비할 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없어 보여도 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지금 수준에서 이해되는 것만 이해하겠다’고 맘먹어야 한다.
▲ 모르는 게 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소풍 가듯 강의를 들으러 가야 하는 이유
이에 대해 동섭쌤은 “어른은 자신이 모르는 게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고, 아이는 자신이 아는 게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다”라는 신선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공자孔子(BC551~479)도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게 무언지 가르쳐주마.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다(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爲政」17).”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동섭쌤의 정의와 통한다. 즉, 모르는 것을 인정할 수 있기에 배울 수 있으며, 그럴 때 강의 시간에 울려 퍼지는 말들에 귀를 쫑긋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강의를 들으러 오기 전에 무언가 부산히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소풍을 떠나듯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강의 시간에 열심히 들으면 되는 것이다. 이걸 우치다쌤은 배우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저는 모르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가르쳐 주세요”, “잘 부탁하겠습니다”라는 세 마디 말로 표현했다.
모든 것은 ‘나는 모르는 게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며, 그렇기 때문에 스승을 붙잡고 ‘가르쳐달라’고 진심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오늘 강의를 들으러 가기 전에 ‘레드 선!’이라 외쳐 온갖 망상을 떨쳐내고, 무언가 앎을 채워야 한다는 허영을 벗어버리고, 그저 신나게 강의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 강의를 듣는다는 건 소풍을 떠난다는 것.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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