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①강: 모르는 게 있으니 알려주십시오
강의 계획이 알려지고 한 달 보름 만에 드디어 첫 강의가 있는 날이 되었다. 아침부터 왠지 모르게 설렌다. 동섭쌤의 강의를 듣는 것도 기대가 되고, 그곳에서 어떤 분들을 보게 될지도 기대가 된다.
▲ 강의는 타자와의 만남이다. 이 강의에서 난 과연 만날 수 있고 어우러질 수 있을까?
강의는 타자다
나는 ‘강의란 타자를 만나는 일이다’라고 생각한다. 타자의 도래는 당연히 저주임과 동시에 축복이라 할 수 있다. 타자를 만나면 내가 어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지 알게 되어, 사람들 앞에 맨몸으로 서있는 것 같은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껴야하기에 저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알게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에선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에 축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저주로만 남느냐, 축복으로까지 갈 수 있느냐는 이 강의에 얼마나 내 마음을 잘 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장자莊子를 우린 흔히 자연주의 철학자로 알고 있지만, 그는 기실 소통을 중시한 인간주의 철학자였다. 그의 책에선 타자는 어떻게 도래하며, 그 때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를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장자가 생각하는 타자는 전혀 다른 생물종이며, 그렇기에 애초에 서로가 서로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완벽하게 다른 존재가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하는 점이 장자의 최대 관심사였던 것이다.
옛적에 바닷새가 노나라 대궐에 날아들었어. 노나라 제후가 궐 안에 데려와 술자리를 베풀고 구소의 음악(한국의 정악 or 현대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며, 가축을 잡아 음식을 제공하며 정성껏 보살폈지. 그러나 새는 곧 어지러워하며 근심과 비탄에 잠겨 감히 고기 한 점 먹지 않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다가 삼일 만에 죽고 말았던 거야.
이것은 인간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했던 것이지, 새를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장자』 「지락」3
昔者海鳥止於魯郊, 魯侯御而觴之于廟, 奏九韶以爲樂,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憂悲, 不敢食一臠, 不敢飮一杯, 三日而死. 此以己養養鳥也, 非以鳥養養鳥也. -『莊子』 「至樂」3
노나라 제후에게 바닷새는 완벽한 타자였다. 하지만 신성한 새였기에 그는 인간에게 베푸는 최고의 예법으로 대우했고 산해진미로 대접했다. 하지만 바닷새는 그런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결국 비실비실 앓다가 죽고 말았다. 『여우와 두루미』라는 옛이야기와 비슷하다. 이에 대해 장자는 ‘인간을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했던 것이지, 새를 대접하는 방법으로 새를 대접하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린다.
▲ 타자란 완전히 다른 존재다. 그래서 나의 방식대로 관계를 맺으려 하면 한 존재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타자란 그저 나와 생각이 다른 존재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나의 방식대로 고집하며 관계를 지속할 경우 서로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건 기본이고, 심한 경우는 죽게 만들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노나라 제후는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경우 대부분 잘못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다. 노나라 제후가 죽은 새를 보면서 ‘내가 좀 더 신경써줬더라면’이라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그는 타자라 생각하지 못했으니, 여전히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여 그리 됐다고 결론지을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다른 타자를 만나도 여전히 자신의 방법으로 타자를 대접할 것이고, 이런 상황은 반복될 것이다.
우린 그런 악순환에 말려들어선 안 된다. 그러니 강의라는 타자를 통해 나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 할 게 아니라, 내가 어떤 규정들에 갇혀 살았고 그걸 남에게 어떻게 강요하며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나는 모르는 게 있다’는 자각이고, ‘그러니 배우겠습니다’라는 선언인 셈이다.
▲ 모든 배움의 기동은 타자를 만나서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같은 강의를 들으러 가다
학교 체육이 끝나고 부랴부랴 서둘러 집으로 갔다.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마음은 벌써부터 바쁘다.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흐리지만,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에는 내리지 않았다. 다행히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하더라. 타이밍 맞춰 내리는 비가 고마웠고, 강의 첫 날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전철을 타고 광화문역에서 내려 에듀니티로 간다. 비는 잦아들었지만 바람은 거세게 불고 날도 잔뜩 찌푸려 있다. 원래 비 오는 날을 좋아하기에 한껏 기분이 업 되었고, 거기에 첫 강의를 듣는다는 기쁨에 절로 행복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가기 위해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만 나는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걸었다.
▲ 잔뜩 흐르고 바람도 거세게 불지만, 오히려 기분은 상쾌하고 좋기만 하다.
에듀니티에서 강의를 듣다
에듀니티엔 두 번 와봤다. 한 번은 2013년 유지 모로 교수 특강 때였고, 한 번은 올해 초 동섭쌤 강연 때 뒤풀이에 참석하려 왔을 때였다. 자주 온 곳은 아니지만, 두 번 온 기억만으로도 에듀니티는 마음이 절로 편해지는 곳이다. 내부야 전형적인 사무실 같은 구조지만, 밝고 화사한 분위기, 그리고 따스한 실내 온도,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의 인상이 긴장된 마음을 한껏 풀어준다.
안으로 들어가니 이번 강의를 기획한 조지연 차장님과 김태선 기획자님이 맞아 주신다. 따스한 환대를 받으며 들어가는 길에 보니, 간식까지 차려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꼴’이라 할 수 있다. 동섭쌤은 몇 날 며칠 고민하며 강의를 준비했을 것이고, 스텝들은 기획부터 강의 준비까지 모든 것을 세팅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나는 그저 이곳에 와서 맘껏 먹고 마시고, 강의를 듣고 가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감사한 마음에 인사를 건네고 간식을 챙겨서 들어왔다.
7시가 되니 김태선 기획자님이 앞에 나와 강의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며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하더라. 그런 후엔 돌아가며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에서 나를 소개하게 될 거란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바짝 긴장했지만, 곧 긴장을 풀고 소개를 했다.
이번 후기엔 워밍업처럼 가벼운 이야기를 담았다. 다음 후기에선 자기소개를 하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첫 강의 제목인 ‘하품 수련의 역설’이 어떤 내용인지 하나하나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 풍성한 먹을거리들. 이렇게 황송할 수가. 강의 들으러 오는 맛도 쏠쏠하지만, 간식 먹으러 오는 맛도 최고일 듯.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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