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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3. 惡은 ‘악’이 아닌 ‘오’다
隱惡而揚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其斯以爲舜乎!” 악(惡)를 숨기고 선(善)을 드러낸다. 그 양쪽 끝을 잡아서 그 가운데를 백성에게 쓰니, 이것이 바로 순(舜)이 순(舜)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이다 然於其言之未善者, 則隱而不宣; 其善者, 則播而不匿. 其廣大光明, 又如此, 則人孰不樂告以善哉? 그러나 그 말이 선이 아닌 것에 있어서는 감춰주고 드러나지 않게 했으며, 선한 것이면 전파하여 숨기지 않았다. 또한 이와 같다면 사람이 누가 기꺼이 선으로 알려주지 않으랴? 兩端, 謂衆論不同之極致. 蓋凡物皆有兩端, 如小大ㆍ厚薄之類. 於善之中又執其兩端而量度以取中, 然後用之, 則其擇之審而行之至矣. 然非在我之權度精切不差, 何以與此? 此知之所以無過不及, 而道之所以行也. 右第六章. 양단이란 여러 논리 중에 같지 않은 극단적인 지극함으로 대개 모든 사물이 다 양단이 있으니, 크고 작음과 두터움과 얇음의 종류가 그것이다. 선한 것 가운데서도 또한 그 양단을 잡아 가운데를 취하여 헤아린 후에 그것을 사용하면 가린 것들이 살펴지며 행실이 지극하여진다. 그러나 나의 저울의 추가 정밀하고 적절하여 어긋남이 없는 게 아니라면 어찌 이에 함께 할 수 있으랴? 이것은 앎이 과함이나 불급함이 없는 까닭이고 도가 행해진 까닭이다. 오른쪽은 제6장이다. |
여기서 악(惡)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악이 아니에요. 싫은 것, 즉, ‘오’예요. 악은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악이라고 하는 것이지, 악이라고 따로 규정된 어떤 것이 있는 건 아닙니다. 따라서 모든 ‘악’은 ‘오’로 환원될 수 있지만 ‘오’가 ‘악’으로 환원되는 것은 아니죠. 이렇게 보면 모든 ‘오’가 ‘악’보다 본질적인 개념인데 서양은 이걸 모르고 악(惡)을 실체화시키고 절대화시켰습니다. 악마니 마귀니 하는 식으로 악(惡)이란 것을 명사화시킨 게 서양의 잘못된 윤리관에서 비롯된 거예요.
이 문장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감정적으로 싫을 수 있는 측면들을 숨겨주고 아름다운 측면을 드러내준다. 또 자기에게 있어서도 나쁜 측면은 숨기고 좋은 측면을 드러낸다”는 의미로 풀 수 있겠죠. 이것은 여러분들이 인간세상을 살아가는 데 명심해야할 중요한 처세술이며 동시에 포지티브(positive)한 인간학의 측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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