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무관한 사물과 이(理)는 존재하지 않는다
왕수인을 이해하려면 마음이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라고 보는 통찰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점만 잊지 않으면 왕수인의 나머지 통찰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몸을 다스리는 것이 바로 마음이고, 마음이 드러난 것이 바로 의(意)이며, 의의 본체가 바로 지(知)이고, 의가 지향하는 것이 바로 물(物)이다. 만약 의가 부모를 섬기는 데 있다면, 부모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만약 의가 군주를 섬기는 데 있다면, 군주를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身之主宰便是心, 心之所發便是意, 意之本體便是知, 意之所在便是物. 如意在於事親, 卽事親便是一物, 意在於事君, 卽事君便是一物,
신지주재편시심, 심지소발편시의, 의지본체편시지, 의지소재편시물. 여의재어사친, 즉사친편시일물, 의재어사군, 즉사군편시일물,
의가 백성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데 있다면, 백성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의가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데 있다면,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이 바로 하나의 물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과 무관한 이치가 없고 마음과 무관한 사물도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전습록』 6
意在於仁民愛物, 卽仁民愛物便是一物, 意在於視聽言動, 卽視聽言動便是一物. 所以某說無心外之理, 無心外之物.
의재어인민애물, 즉인민애물편시일물, 의재어시청언동, 즉시청언동편시일물. 소이모설무심외지리, 무심외지물.
왕수인은 몸을 다스리는 것이 마음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물에 빠지는 아이에게로 마음이 움직이면 곧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생합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요? 측은지심이 들자마자 우리는 몸을 이끌고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하려고 달려갈 것입니다. 마음이 몸을 다스린다고 이야기했을 때, 왕수인이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위험을 꺼리는 몸을 통솔해서 아이에게로 이끄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마음은 움직일 때도 있고 고요하게 있을 때도 있습니다. 왕수인은 전자의 경우를 의(意)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였다면, 그것은 이미 어떤 구체적 사물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의(意)는 항상 어떤 것에 대한 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왕수인은 의가 향해 있는 그 대상을 물(物)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우리 마음이 향해 있는 대상을 사물이라고 정의 내린 것이지요.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지(知)라는 개념입니다. 이것이 곧 왕수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양지(良知)입니다. 양지는 윤리적 앎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내 마음이 부모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이 경우 섬겨야 할 부모가 물(物)이라면 부모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곧 의(意)입니다. 그렇다면 양지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가 부모에게로 향해 있을 때 효를 실천해야 하는 것을 자각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물론 내 마음의 의는 부모가 아닌 다른 것으로 향할 수도 있고, 부모에게 향해 있으면서도 효도가 아닌 다른 것을 원할 수도 있습니다. 부모를 향해 원망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 경우 윤리적 앎으로서의 양지는 바로 어떤 의가 선한 것이지 악한 것인지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왕수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가 사용한 물(物)이라는 개념도 단순히 사물만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물은 ‘부모를 섬기는 것’ ‘군주를 섬기는 것’ ‘백성들을 사랑하고 사물을 아끼는 것’에서부터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이것은 마음, 즉 의(意)가 기본적으로 무엇인가를 지향한다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되었지요. 지향의 대상은 단지 사물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꽃과 풀과 같은 사물을 지향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꽃향기를 맡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지향할 수도 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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