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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보지 않을 때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왕수인 - 보지 않을 때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건방진방랑자 2022. 3. 7.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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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 않을 때 꽃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아마 여러분도 제자의 생각에 상당히 공감할 것입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했고 또한 생각도 할 수 없지만, 무수히 많은 것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나요? 결국 여러분도 그 제자처럼 내 마음과 관계없는 다양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자의 질문에 대해 왕수인은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줍니다.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 꽃은 그대의 마음과 함께 고요한 상태에 있었네.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는 순간 꽃의 모습이 일시에 분명해졌지. 그러니 이 꽃은 그대의 마음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네.”

 

이 또한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답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왕수인의 대답을 음미해보지요.

 

왕수인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마음은 무엇인가를 향해 움직인다는 통찰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꽃을 보기 전에 꽃과 마음이 모두 고요한 상태에 있었다는 왕수인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지요. 이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고요한 상태이니까요. 왕수인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도, 그리고 꽃도 고요하게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회계산 어느 산길 바위틈에 이르자, 우리의 마음이 그 꽃을 향해 일순간 움직이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 꽃도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지요. 바로 이점이 중요합니다.

 

꽃을 보지 않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아직 흘러갈 곳이 없어서 고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꽃을 보았을 때 우리의 마음은 폭포수처럼 그 꽃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해해선 안 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꽃을 보지 않았을 경우나 꽃을 보았을 경우를 마치 감각적인 경험의 유무에 따른 구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꽃과의 관계에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경우와 마음이 이미 움직인 경우를 의미할 뿐입니다. 회계산을 거닐다가 아름다운 꽃을 눈으로 보았다 할지라도, 마음이 고향의 애인에게 가 있다면 그 아름다운 꽃은 여전히 고요한 상태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어쩌면 그 꽃은 거의 존재감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한참 뒤 누군가가 아까 아름다운 꽃을 보았냐고 묻는다면, 마음이 고향의 애인에게 가 있던 사람은 그 꽃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물래이순응(物來而順應)’이라는 학설을 주장한 유학자 정호의 가르침이 떠오르지 않나요? 꽃이 다가오면 그것에 마음을 두고, 애인을 보면 그것에 마음을 둘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요. 책을 볼 때는 마음이 그 책에 가 있어야 합니다. 영화를 볼 때는 마음이 그 영화에 가 있어야 하지요. 이것이 바로 물래이순응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마음이 어제 만난 애인에게 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것은 자신이 만난 사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정호가 말한 것처럼 물래이순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을 특별하게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우주의 마음인 것처럼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새롭게 생기는 다양한 사태에 마음을 둘 수 있을 테니까요. 작은 것 하나에만 마음이 계속 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것에도 마음을 둘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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