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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어두운 중세기의 시작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5장 삼위일체 논쟁 - 어두운 중세기의 시작

건방진방랑자 2022. 2. 2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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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삼위일체 논쟁

 

 

어두운 중세기의 시작

 

 

초기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라는, 헤겔 말을 빌리면 세계사적 개인’(World-Historical Individual)을 통하여 로마를 정복하고 로마로 통한 모든 세계의 길을 정복했지만, 로마와 더불어 그 진실한 모습은 자취를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소아시아의 도시 니케아에서 300여 명의 기독교 주교들을 소집해놓고 기독교 교리에 관하여 그 입심 거센 주교들의 논쟁을 주재하고 앉아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모습은 이미 어두운 서양 중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aea, 3255)에서 문제가 된 사안은 바로 초대교회의 센터인 알렉산드리아의 두 종교지도자간에 7·8년 동안 비판의 거센 불을 뿜은 논쟁의 조정에 관한 것이었다. 니케아 종교회의는 일반세계사에서 매우 중대한 사건으로 취급된다. 세계 3대종교의 하나로서의 오늘의 기독교의 모습을 결정한 것이 바로 이 니케아 종교회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알렉산드리아 교구내의 지역적 논쟁이 불씨였다고 할 때, 알렉산드리아가 당대 기독교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늠질 해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두 지도자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bishop) 알렉산더(Alexander, 312?~328 주교 재직)와 그에 항쟁한 아리우스(Arius, c. 250~336)목사였다아리우스의 직책에 관해서는 ‘presbyter,’ ‘elder,’ ‘priest’ 등의 영역표현이 사용되고 있으나, 오늘날의 신부나 장로 개념에는 정확히 부합되지 않는다. 그는 정확하게 안수 받은 설교자였다. 따라서 요즈음 조직개념으로 말하면 목사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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