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부터 모조리 다른 두 개의 족보
우리 한국인들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족보학에 관심이 많은 민족이다. 민간 레벨에서 우리나라처럼 모든 집안마다 장구한 족보를 간직하고 있는 문명은 이 지구상에서 유례가 별로 없다. 그런데 족보는 본시 부계혈통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마리아 처녀잉태 사실은 바로 부계의 혈통을 단절시키기 위한 장치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요셉의 아들이 아니다. 그런데 족보는 요셉의 족보다. 참으로 이런 넌센스가 어디 있는가? 한국인들처럼 족보에 민감한 사람들이 성서를 읽을 때는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에 관하여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바로 마태ㆍ누가의 고민이 있다. 예수의 출생을 범용한 인간의 출생과는 다른 것으로 그려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예수를 그렇게 황당무계하게 성령의 잉태로서만 제시하기에는 너무도 설득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예수에게 유대민족의 구체적 역사지평을 부여해야만 했다. 그 역사지평이란 메시아 대망사상이었고, 메시아는 반드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야만 했던 것이다.
그래도 족보를 읊어대려면 한국인들처럼 비슷하게는 읊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족보를 비교해보면 달라도 이건 너무 황당무계하게 다르다. 아버지인 요셉까지는 일치하지만 요셉의 아버지인 할아버지부터 그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 마태는 요셉의 아버지가 야곱이라 했고 누가는 헬리라 했다. 그 이상부터도 서로 들어 맞는 이름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까지 28대인데, 누가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까지 43대이다. 누가의 족보에 의하면 29대 할아버지의 이름이 또 다시 예수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각기 다른 전승에 의거했다기보다는 각기 다른 상상력이 발동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태는 그래도 족보가 아브라함에서 끝나지만, 누가의 경우는 족보가 아브라함(57대)에서 다시 노아, 므두셀라를 거쳐 아담에 이르기까지 20대를 더 거슬러올라가 결국 하나님에 이르게 된다. 결국 예수의 78대조 할아버지가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아니한가? 예수와 하나님을 인간의 혈통족보로 연결시키다니! 하여튼 누가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동정녀 탄생설화를 만들었고, 또다시 요셉의 혈통을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시켰다.
내가 우리말 개역한글판을 읽으면서 발견한 탈문이 누가복음 3:33에 있다.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이 두 대 사이에 한 대가 누락되어 있다. ‘이 이상은 아미나답(Amminadab)이요, 그 이상은 아드민(Admin)이요, 그 이상은 아니(Arni)요.’가 되어야 한다. 우리말성경의 국제적 공신력과 관계되는 중대사안이다. 대한성서공회에 이 부분의 개정을 요청한다. 뿐만 아니라 관주성경전서본 우리말 성서에 오식이나 오자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막 6:3의 예수 형제 중의 하나인 ‘요셉은 ‘요세’(Joses)로 표기되어야 한다.
역대상 3:1의 ‘압논’은 ‘암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명백한 오식일 뿐이다(cf. 사무엘하 3:2). 로마서 5:4의 ‘鍊鍜’(연하)는 ‘鍊鍛’(연단)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요한복음 10:33, 36의 ‘僣濫’(철람)은 ‘僭濫’(참람)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생각보다 많은 오류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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