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순결한 처녀 이미지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의 사후 예루살렘교회의 리더가 되었던 사람이다. 얼굴이나 인상착의가 예수와 매우 흡사했고 인격적으로도 매우 원만하고 통솔력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말하는 어떤 학자들은 예수가 죽은 후 제자들에게 다시 모습을 보인 그 부활한 예수는, 예수와 똑같이 생긴 야고보가 예수의 사후 교단을 수습하기 위하여 위로방문하러 다닌 스토리들이 와전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루살렘교단은 그렇게 해서 야고보에 의해서 성립했던 것이다. 헤롯왕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자기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호들갑을 떨었다(막 6:16, 눅 19:7~9, 마 14:1~2), 예수를 사모하던 사람들이, 그에 대한 애정이 사무치던 사람들이, 야고보를 보았을 때 예수가 살아 돌아온 느낌을 가졌으리라는 것은 쉽게 상정할 수 있다. 초기 교부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수의 동생 야고보는 금욕주의자였으며 주색을 철저히 금하였으며, 자기 몸에 일체 작위적 행위를 가하지 않았기에 면도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신비적이지 않고 매우 합리적인, 그러면서 내공이 강했던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성서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사실에 접근하기는커녕 점점 그 본질로부터 멀어져만 간다는 것이다. 예수의 동정녀탄생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누가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물론 예수는 마리아가 낳은 첫 아기가 되어야 한다(눅 2:7). 그러나 야고보의 의젓한 리더십을 상고해보면, 야고보가 예수의 동생이 아니라 형이었을 수도 있다. 예수라는 동생의 사역과 수난의 삶을 이해하고 소리없이 후원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동정녀탄생을 고집하는 한에 있어서는 예수는 필경 사생아(bastard)가 되어버리고 만다. 『사기(史記)』의 저자 사마천은 공자(孔子)를 「세가(世家)」 속에 존엄하게 그리면서도 그가 숙량흘(叔梁紇)의 사생아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안씨녀(顔氏女)와 야합(野合)해서 낳았다고 했으니[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 정식 결혼절차를 밟지 않고 들판에서 그냥 교합하여 낳은 자식이라는 뜻이다.
물론 복음서의 기자들에게 그런 사실의 기록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복음서가 헬라세계에 퍼지자 이미 2세기 중엽이면 동정녀마리아탄생설에 관한 신랄한 공격이 들어온다. 이방인 철학자 켈수스(Celsus)는 동정녀탄생설은 단지 예수가 사생아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만든 조작기사라고 주장하면서, 그 당시 갈릴리에 와있던 로마 병정 판테라(Panthera)라는 사람에게 마리아가 강간 당하여 낳은 아기라는 역사적 사실을 설득력있게 논파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교부들은 마리아의 순결한 처녀 이미지를 계속 고집하기 위하여 예수의 다른 형제ㆍ자매들은 요셉의 전처소생이라고 둘러댔고, 4세기의 위대한 성서학자 제롬(Jerome)도 이 형제ㆍ자매들은 예수의 사촌(cousins)일 것이라고 둘러댔다. 참으로 구차스러운 변명이다. 성서신학자들이 성서를 있는 그대로 읽지를 아니 하고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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