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의 유아살해의 허구성과 마태의 문제의식
또 마태복음에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후 헤롯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地境)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라 명하였고(마 2:16), 그래서 요셉은 아기와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해 있다가 헤롯이 죽은 후에야, 그것도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마태는 예수의 부모가 원래 나사렛 사람이 아니라 베들레헴에서 살던 사람으로 그렸던 것이다. 왜냐하면 마태는 ‘원적 호구조사’라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윗의 고장 베들레헴 사람으로 그렸고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복음서 앞머리를 족보로써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식구를 나사렛에 가서 살게 하기 위하여 동방박사와 헤롯의 유아살해의 드라마를 삽입했다.
그러나 헤롯왕이 아무리 무지막지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근거없이 떠돌아 다니는 현자【‘박사’라는 표현은 박사학위의 소지자처럼 일정한 제도를 거쳐 자격을 얻은 존자라는 뜻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번역은 오해의 소지가 크게 있다. 원어는 마고이(magoi)인데 원래 마술사라는 뜻이다. 바빌론 지역의 점성술에 달통한 현자(wise man) 정도의 의미가 된다】의 말 몇마디를 듣고 자국의 국민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서 마태가 노리고 있는 것은 예수의 탄생을 모세의 이미지와 오버랩시키는 것이다. 헤롯의 유아 살해는 바로 파라오의 유아 살해를 전이시킨 것이다. 구사일생으로 강물에서 건져진 모세와 구사일생으로 현몽 덕에 피신한 예수의 이미지가 또다시 애굽땅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마태복음의 저자의 독특한 인식구조가 있다. 그는 신약의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를 철저히 구약의 맥락 속에서 규정지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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