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그마의 본질적 성격
성서를 이렇게 한 줄 한 줄 분석해 들어가면 사실(史實)과 부합하는 것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사가 별로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분석방법이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복음서의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보도하려고 이 복음서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쁜 소식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선포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 정보의 역사적 근거(historical security)를 말하기 전에 구성적 창조성(compositional creativity)을 말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된 역사(history remembered)가 아니라 역사화된 예언(prophecy historicized)이다. 여기서 예언이란 사전(事前)의 예언이 아니라, 사후(事後)에 그 예언적 전거를 모색해낸 것이다. 역사적 사실로서의 수난(the historical passion)이 예언적 수난(the prophetic passion)으로 발전하고, 그 예언적 수난이 또 다시 내러티브적 수난(the narrative passion)으로 구체화 되어 복음서에 등장한 것이다(Crossan, Jesus 21, 145).
물론 『춘향전』도 ‘숙종대왕 즉위초년 서울 삼청동 사시는 이씨양반 한분이 계시는데 세대 잠영지족(簪纓之族)이요…….’하고 시작하고, 『심청전』도 ‘송나라 원풍팔년 황주 동화동에 봉사 한사람 사는디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라……’하고 시작한다. 모두 이 사건이 정확한 역사적 정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되고 있는 것이다. 숙종 초년은 1674년이고, 원풍 팔년은 1085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춘향과 심청의 이야기를 정확한 연대기 속에서 뒤져야 할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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