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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케리그마의 양식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케리그마의 양식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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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리그마의 양식

 

 

물론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진지한 독자들은 금방 대꾸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서의 기록을 우리는 춘향전과 같은 노래가사의 수준으로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이 이상의 픽션도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복음서의 저자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픽션으로서 날조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복음서는 분명히 역사의 지평을 깔고 있다. 그리고 복음서의 저자들도 예수라는 역사적 지평에서 발생한 많은 구술이나 성문화된 전승들을 충실하게 수집하고 종합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복음서는 어디까지나 복음서의 양식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양식에 대하여 진위판단을 내리기 전에, 그것을 하나의 양식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0061210일 대통령 아무개는 중앙청 앞에서 돌연히 사망하였다라는 기사가 분명히 신문에 났다고 하자! 물론 그 기사가 사회면 기사로 났다고 하면 우리는 사실적 변화에 대한 충격을 느끼면서 그것의 진위를 가리려 할 것이다. ‘그게 정말 사실인가?’ 그러나 그것이 신문 속의 소설의 한 줄로 났다고 하면, 아무도 그것의 진위를 가리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같은 언어, 동일한 정보라 하더라도 그것이 표현된 양식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면의 기사는 사회부기자의 육하(六何)원칙에 따른 정확한 기술양식이 있다. 그러나 소설면의 기사는 살아있는 인물을 패러디한 어떤 문학적 양식에 따라 기술되었을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양자의 표현양식은 매우 다르다. 복음서는 일차적으로 케리그마(kerygma, κρυγμα)라는 양식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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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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