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달타의 합리적인 사유과정
그런데 싯달타의 사유체계에 있어서는 전혀 이와 같은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있을 수가 없다. 싯달타의 명상은 바로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세계관, 그 합리적 법칙체계를 앞지른 선구적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그냥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과학적 세계관은 인류역사를 통해 싯달타와 같은 수없는 붓다들, 이 우주와 인간에 대하여 남다른 통찰을 한, 수 없는 각자들이 발견한 연기적 법칙들의 축적에 의하여 형성되어온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과학자를 붓다라 아니 부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의 붓다(각자)였다. 아인슈타인이라는 독일의 한 청년이 골방에 쑤셔박혀 명상한 연기법칙의 내용으로 인류를 수억겁년 동안 지배해온 공간과 시간의 개념 그 자체가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고 한다면, 그러한 변화의 폭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세에 등장한 어떠한 종교가 일으킨 변화의 폭보다도 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실제로 이 세계를 해석하는 이해의 방식을 근원적으로 변화 시켰을 뿐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이해의 방식은 물리적인 현실 입증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E = mc²’은 연기의 법칙일 뿐이니라, 원자폭탄이라는 구체적인 물리적 현상이기도 했던 것. 그러나 이러한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투하되었을 때, 죄없은 수많은 생령들이 고통과 신음 속에 쓰러져 가야만 했고, 그것은 일본의 가혹한 제국주의에 대한 당연한 응징이기에 앞서 인간세의 무력적 대결을 한 차원 더 높은 극악한 상황으로 조장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미소냉전체제의 출발이자 미제국주의의 오만의 시발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의 연기의 법칙은 인간세의 고통을 해결하는 방향에서만 작동하였던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 바로 인간 싯달타가 고뇌하는 연기적 실상의 총체적 문제가 내재하는 것이다.
과학적 연기법칙의 대상은 주로 물리적 현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싯달타의 연기적 직관이 정신적 현상에 국한된다고 말해서는 아니 된다. 싯달타에게는 물리적 현상과 정신적 현상을 구분짓는 심신이원론적 사고가 전제되어 있질 않다. 흔히 내연기(內緣起: 정신적 현상의 분석), 외연기(外緣起: 물리적 현상의 분석)라고 부르는 그러한 분별적 의식이 싯달타의 명상에는 전제되어 있질 않았다. 그러나 청년 싯달타의 일차적 관심은 분명 인간의 노(老)ㆍ병(病)ㆍ사(死)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인간세의 윤리적 과제 상황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인류사상 최초로 과학과 종교와 윤리를 통합하는 대 통일장론의 연기체계를 수립하려고 시도한 대사상가였고 대각자였다.
인간은 왜 고통스럽게 늙어가고 또 죽어야 하는가? 왜? 왜? 그 왜를 나에게 말해달라! 인간의 노사는 인간이 태어났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즉 노사(老死)는 태어남[生]을 연(緣)으로 하여 기(起)한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태어남이 있는가? 태어남은 또 무엇에 연(緣)하여 기(起)하는가? 그것은 사물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물에 존재성[業有]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이 존재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태어남이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성 그 자체는 무엇 때문에 생겨나는 것인가? 그것은 많은 존재의 가능성 중에서 어떠한 존재를 취사선택하는 취함[取]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또 그 취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무 연하여 기한 것인가? 그것은 갈망하는 사랑[渴愛, taṇhā]이 있기 문에 생겨난 것이다. 사랑이라는 집착이 없으면 분별적 선택, 취함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취한 것이다. 그를 국면 그 사랑은 또 왜 생겨난 것인가? 무엇에 연하여 기한 것인가? 사랑이란 감수성(受, vedharā)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희로애락을 감수할 수 있는 그러한 센시티비티가 있기 때문에 감수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감수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 이렇게 이렇게 끊임없이 싯달타의 사고는 진행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개방적이고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사유추리 과정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물의 법칙이다. 老死 ← 生 ← 有 ← 取 ← 愛 ← 受……
▲ 인간의 갈애를 관조하는 티벹 스님. 마하보디 템플 경내.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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