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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12연기설이 만든 혼란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12연기설이 만든 혼란

건방진방랑자 2022. 3. 15.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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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설이 만든 혼란

 

 

그렇다면 과연 이 연기(緣起, pațiccasamuppāda)란 무엇인가? 불교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 본 사람이라면, 연기하면 곧 12지연기론(十二支緣起論)이니, 12지연기설이니, 12인연이니 하여 12개의 고리를 좌악 늘어놓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노사(老死, jarā-maraṇa) → ② (, jāti) → ③ (, bhava) → ④ (, upādāna) → ⑤ (, taṇhā)→ ⑥ (, vedharā) (, phassa) → ⑧ 육처(六處, saḷāyatana) → ⑨명색(名色, nāma-rūpa) → ⑩ (, viññāṇa) → ⑪ (, saṅkhāra) → ⑫ 무명(無明, avijjā) 운운. 그리고 삼세양중(三世兩重)의 인과(因果), 태생학설(胎生學說)이니 운운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말하기를 12지연기론이야말로 근본불교의 요체며, 모든 상이 일어나는 원리요 도리요 이법이다 운운!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당장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지고, 도무지 불교는 알 수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말아지는 것이다. 연기론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원리적인 실체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아이쿠 두야!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붓다의 말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팔리장경 중니까야(中尼柯耶) 28,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있다南傳大藏經9-340. 그리고 같은 말이 한역장경 中阿含經卷第七, 象跡喻經第十에는 若見緣起, 便見法; 若見法, 便見緣起.’라는 구절로 되어 있다. 大正1-467..

 

 

연기를 보는 자는 곧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곧 연기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또 말했다若比丘見緣起爲見法, 正見法爲見我. 了本生死經, 見十二因緣, 卽見法. 即是見佛. 稻芉經.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본다. 법을 보는 자는 곧 나 부처를 본다.

 

 

이러한 말들은 우리에게 연기가 얼마나 부처의 사상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설파해주고 있지만, 이러한 말 때문에 또 연기가 곧 지고한 법, 무상의 원리라는 생각을 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법(dhamma)이라고 하는 것은 도(, Tao)와도 같은 지고한 원리가 아니라, 그냥 단순한 유위ㆍ무위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체의 사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것이요, 법을 보는 자는 부처를 보는 것이라고 한 말은, 연기 그 자체가 지고의 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방식으로 사물을 볼 줄 알아야만 곧 깨달음에 도달케 된다는 매우 단순한 뜻이다.

 

12연기를 내가 지금 여기 설파한다 해도, 독자들은 결코 연기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대학교시절 때 ‘12연기설을 배운 이래, 오늘날까지 단 한 번도 12연기설을 바르게 이해했다는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12연기설에 대한 논란은, 해석의 방식이 너무도 다양하고 갈래가 많아 그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노병사(老病死) 다음에 꼭 생()이 와야만 하며, 생 다음에 꼭 유()가 와야만 하며, 유 다음에 꼭 취()가 와야만 하며, () 다음에 꼭 갈애(渴愛)가 와야만 하는지 그 을 이해할 길이 없었다. 싯달타의 머리 속에서는 그 이 꼭이었을지는 모르지만, 도무지 내 머리 속에서는 그것이 꼭이 될 길이 없었다. 그 인과관계가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할 하등의 필연성이 확보되질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올 김용옥은 영원히 싯달타를 이해 못하는 천치 바보로서 이 한많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 것인가?

 

임마누엘 칸트는 그의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 추계 창상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철학(Philosaphie)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철학하는 것(philosophieren)을 가르질 뿐이다.

 

 

나는 불행하게도 불교교설에 관한 한 다음과 같이 나에게 말해주시는 스승님을 만나질 못했다.

나는 그대들에게 12지연기론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에게 연기적으로 생각하는 법만을 가르칠 뿐이다.”

 

 

 인도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는 것은 소뿐만이 아니다. 돼지고 개고 염소고 모든 가축이 문명 속에서 방목된 채로 인간과 공존하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서 멧돼지를 몰고 다니는 목동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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