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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부록 6. 붓다가 사랑한 도시 바이샬리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서설 - 부록 6. 붓다가 사랑한 도시 바이샬리

건방진방랑자 2022. 3. 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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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6. 붓다가 사랑한 도시 바이샬리

 

 

싯달타의 시대는 종족사회와 국가가 대립하고 있었다. 이 종족사회의 이념을 살려 공화제 국가를 성립시킨 최초의 종족이 릿챠비종족(Licchavi)이며, 그 수도가 바이샬리(Vaiśāli or Vesāli)이다. 바이샬리는 붓다 시대에 가장 화려했고 부유했던 미도였으며 교통ㆍ문화ㆍ경제의 중심지였다. 6세기 공화정을 성립시켰으며 마가다. 굽타 제국시대에까지 천여년간 그 아이덴티티를 지속시켰다. 고대 로마와 상통한다. 싯달타가 속한 샤캬족도 릿챠비족의 지배영역에 속해 있었다. 인도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공화국이었다. 지금도 인도 공화국 중앙 정부의 국회가 개원할 때는 이곳 카라우나 포카르(Kharauna Pokhar) 연못의 물을 성수로 사용하여 의식을 집행하고 있다.

 

 

 

 

붓다는 바이샬리를 무척 사랑했다. 바이샬리라는 도시문화의 개방성을 사랑했다. 500명의 여성 수행자들의 출가를 허락한 곳도 이곳이요, 그가 열반(涅槃, nirvāṇa)을 향해 쿠시나가르로 떠나기전 최후의 하안거를 보낸 곳도 이곳이었다. ‘여래가 이 아름다운 베살리 마을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라고 슬픈 여운을 남겼다. 그의 사후 제2차결집이 이루어진 곳도 이곳이요, 대승불교운동의 단서가 마련된 곳도 이곳이었다. 역사적 싯달타는 독재적 군주제보다는 민주적 공화제를 선호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내가 바이샬리 한 마을을 찾아갔을 때 동네장로들이 짜이를 마시며 담론하고 있는 모습은 고대 공화제의 실상을 연상시켰다. 불알 내놓고 앉어있는 아동 곁에 깔려있는 동네 마당의 멍석들은 우리나라의 평화로운 옛 부촌의 정취를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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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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